201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2020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영화 ‘기생충’.
2021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아시아 가수 최초로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받은 ‘방탄소년단(BTS)’.
2021년 골든글로브 TV 부문 남우조연상, 에미상 감독상·남우주연상 등 6관왕에 오른 ‘오징어 게임 시즌1’.
영화·드라마·음악 등 대중문화의 모든 장르에서 예술성과 작품성·대중성을 인정받은 대기록들로 대중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30년 전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결과다. 뉴욕타임스는 K컬처가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고 주류로 떠오르던 2021년 한국에 대해 “서구 문화 소비자에서 주요 문화 수출국으로 탈바꿈한 ‘문화적 거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90년대 초반까지도 미국·일본·유럽의 영화·드라마·음악을 소비하고 모방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대중문화 산업의 성장성과 파급력을 간파한 국내 기업들은 지난 30년 동안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글로벌 무대에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한국을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지로 바꿔 놓았다.
업계에서는 우리 대중문화가 비약적인 도약을 시작한 기점을 1995년으로 보고 있다. 방송·미디어뿐 아니라 영화·음악 등 문화 산업 전반의 새로운 토대가 이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화된 시청층을 겨냥한 케이블TV가 출범하면서 지상파 중심의 방송 시장에 변화를 가져왔고 콘텐츠의 양적·질적 성장이 시작됐다. K팝 전문 채널 Mnet 등은 젊은 시청자를 사로잡으며 지상파 중심의 대중문화 트렌드가 케이블 방송사로 대이동하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Mnet이 ‘한류의 시작’인 K팝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이후 글로벌 음악 축제인 ‘마마 어워즈’, 융복합 컨벤션 ‘KCON’으로 이어지며 K팝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K컬처 중 하나가 됐다.
특히 업계에서는 1995년 CJ 문화 사업이 출범하면서 개별 사업 수준에 머무르던 한국의 대중문화를 ‘산업’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충무로 자본에 변동이 일어나면서 삼성·대우·SKC 같은 대기업들이 영상 산업에 진출했지만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에 따른 구조조정과 함께 일제히 영상 산업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CJ는 1990년대 초반 문화 불모지에서 영화 사업에 뛰어들며 세계 시장 진출의 밑그림을 그렸고 IMF 위기 등 여러 부침을 겪으면서도 뚝심 있게 문화 산업에 투자를 이어갔다. 최근 영화·드라마·K팝 등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는 자양분과 토대가 이때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CJ ENM이 30년 동안 문화 사업에 투자한 금액은 약 10조 원에 달하며 현재까지 창출한 지적재산(IP) 수는 무려 5000여 개다. 보유 채널도 20개로 국내에서 가장 많다.
1995년은 한국 영화사에서도 중요한 해다. 1995년 이재현(현 CJ그룹 회장)·이미경(현 CJ그룹 부회장) 남매는 청바지에 티셔츠·운동화 차림으로 할리우드 스타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개인 스튜디오를 찾아가 피자를 먹으며 협상을 벌였다. 당시 스필버그는 ‘알라딘’ ‘라이온킹’ 등을 만든 애니메이션 제작자 제프리 캐천버그 등과 함께 영화사 드림웍스를 세우고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앞서 삼성그룹이 단독 투자자라는 조건을 내걸고 10억 달러 가까운 출자 금액을 제시했지만 협상이 결렬된 상태였다. 결국 드림웍스의 선택을 받은 CJ는 그해 4월 드림웍스에 3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2300억 원)를 투자했다. 3억 달러는 당시 제일제당 연간 매출의 20%에 해당하는 규모로 회사의 명운을 건 결정이었다. CJ와 드림웍스의 협력은 단순한 계약을 넘어 K컬처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과 아카데미를 휩쓴 배경에도 CJ의 영화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CJ ENM 관계자는 “지난 30년 동안 소프트파워의 힘을 믿고 뚝심 있게 달려온 결과 글로벌 파워 IP하우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K컬처를 선도하며 새로운 챕터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CJ ENM은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대중문화 산업 트렌드에 적극 대응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나의 아저씨’ ‘사랑의 불시착’ 등 웰메이드 K콘텐츠가 보편적인 글로벌 대중문화로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디지털·글로벌 사업 기반 확보를 위해 티빙의 오리지널 투자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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