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위해 비주력 사업 매각에 나섰지만 사모펀드(PEF)와 몸값에 대한 이견으로 번번이 거래가 결렬되고 있다. 유동성이 풍부한 시절 투자한 돈을 거둬들여 남은 사업에 현금을 투입해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좀처럼 눈을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PEF와 줄곧 손을 잡았던 SK나 CJ(001040)그룹도 지금은 동상이몽에 빠진 처지다.
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097950)의 그린바이오사업부 매각은 유력한 인수후보였던 MBK파트너스와 가격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CJ제일제당이 먼저 매각 의사를 접었다. 초반 비공식 협상 과정에서 양측의 이견은 최소 3조원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이 원했던 가격은 최소 5조원 이상이었지만 MBK측은 이보다 절반 이하로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면서 “애당초 MBK는 사업 확장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을 더 올릴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CJ그룹은 과거 MBK로부터 CJ CGV(079160)의 아시아 법인 투자를 유치한 인연이 있는데, CJ그룹은 초반부터 협상해온 MBK측과 막판까지 조율이 어려워지자 실망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번 매각에 정통한 관계자는 “MBK측은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공식적으로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그린바이오사업부의 주력인 사료용 아미노산이 중국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중국 이외 미국 시장에서는 아직 수요가 적고, 유럽 시장에서는 인도네시아 산지를 통한 대체재가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에서는 추후 CJ제일제당이 매각을 재개할 경우 중국계 사료기업이 주요 인수후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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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PEF와 거래하면서 이해도가 높은 SK그룹 역시 SK에코플랜트 매각 과정에서 차가운 반응을 체감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과거 PEF로부터 폐기물 기업을 적극적으로 사들이면서 몸값을 높였다는 볼멘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이제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 폐기물 자회사를 매각하기 위해 KKR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KKR는 약 2조원을 제시한 반면, SK에코플랜트는 2조 5000억 원 이상을 요구하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SK에코플랜트는 칼라일그룹, 케펠 등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칼라일그룹은 인수 의향이 낮고 케펠은 보유한 펀드 자금이 최대 1조 4000억 원 안팎에 불과해 높은 가격을 제안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계약 체결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사례도 등장했다. 효성화학은 지난해 11월 특수가스사업부를 팔겠다고 내놨다가 IMM프라이빗에쿼티-스틱 컨소시엄과 협상을 스스로 철회했다.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 부채만 1조원이었던 효성화학은 결국 계열사 효성티앤씨(298020)에 매각해 9200억 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업계 관계자는 “4000억~8000억 원대 매물이 많아야 중형·대형 PEF 모두가 관심을 보이면서 거래가 활발해질텐데 현재 수 조원 단위 매물이 많아 거래가 쉽지 않다”면서 “올해는 매각 시도는 있겠지만 최종 계약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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