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원 A씨는 2019년 모의고사 출제·검토위원을 맡았던 교사 8명을 섭외해 ‘문항공급조직’을 꾸렸다. 이들은 지난해 5월까지 2000여 개의 문항을 사교육업체·강사에 판매하고 6억6000만 원을 받았다. 이 중 2억7000만 원은 자신의 문항 제작비·알선비 명목으로 떼어 자신과 배우자 계좌로 수취했다.
#고교 교원 B 등 4명은 2017∼2023년 사이 사교육업체 C, D 등과 문항 거래로 5000만 원 이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은 수능 등 출제위원 참여를 위한 심사자료를 작성할 때 “사교육업체와의 거래 사실이 없다”고 적었고, 실제로 수능이나 모의평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했다.
18일 감사원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실태 점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처럼 사교육 카르텔에 연루된 교원은 최근 5년 간 249명에 달했다. 감사원은 비위 정도가 중하다고 판단되는 교사 29명에게는 징계요구(8명)와 비위통보(22명)하고 220명은 교육부에 적정 조치토록 통보했다.
최근 5년간 사교육업체로부터 5000만 원 이상을 수취한 서울·경기 및 부산 등 6개 광역시 고교 교사를 중심으로 점검한 결과, 249명은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사교육업체 문항거래를 통해 총 212억 9000만 원을 수취했다. 서울·경기의 사교육업체 문항거래 규모는 198억 8000만 원(93.4%)이며, 서울(75.4%)의 경우 대치동·목동 등 대형 사교육업체가 집중된 지역 소재 학교 교원들의 문항거래가 많았다. 문항거래는 주로 과학(66억 2000만 원, 31.1%), 수학(57억 1000만 원, 26.8%) 등 수능 주요 과목에서 이뤄졌다.
주로 사교육 업체 유명 강사들이 현직 교사들과 결탁해 문항 거래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업체 문항제작팀, 강사가 EBS 교재 집필진 명단, 인맥·학연 등을 통해 출제능력이 있는 교원을 접촉하고 거래를 제안한 후 문항 유형·단가(난이도별 차등) 등을 정해 구두 계약 체결을 하는 방식이었다. 일례로 고교 교사 E씨는 강사 F씨에 2015년부터 모의고사 문항을 꾸준히 제작·판매해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총 6억 1000만 원을 수취했다. 교사와 업체의 1대 1 및 조직적 형태로 문항거래가 이뤄졌으며, 상호 소개와 새로운 교원 소개를 통해 문항 거래를 확산했다. 일부는 사교육업체에서 구성한 문항제작팀에 가담하면서 팀장 역할을 수행하거나 교원을 섭외해 팀을 직접 구성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증 부실과 교육부의 지도·감독 소홀도 이러한 행태를 부추겼다. 일례로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출제위원이었던 국립대 대학교수는 직전 년도 자신이 2022년 감수한 EBS 교재 문항을 수능 영어 지문 23번 문항으로 출제했다. 평가원이 검증에 실패한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2021년 교원의 겸직 허가 실태를 조사하면서 문항 거래 행위 16건이 확인됐음에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이번 감사 결과로 당국의 사교육 업계에 대한 추가 제재도 잇따를 전망이다. 감사원은 각 학교에서 출제된 시험 문제를 영리 목적으로 이용하는 한 온라인 사교육 업체에 대해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발 조처하라고 교육부에 통보했다. 전·현직 입학사정관이 사교육 업체에 취업하거나 설립하는 일이 없도록 제재 근거 신설을 위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과외 교습을 한 것으로 확인된 교원 23명을 고발 조처하라고도 통보했다.
교육부는 2016년 7월 시도 교육청에 학원용 문항 매매행위 금지 등 공문을 보냈으나, 인수인계 누락 등 사유로 교원의 문항거래에 대한 지도·감독이 소홀해지면서 문항거래가 이어지는 결과를 야기했다고 감사원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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