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바람이 매섭고 기온이 찬 날인데도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 한 달간 시설 보강 작업으로 멈췄던 생산라인이 다시 가동되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분위기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가 한 라인에서 함께 생산되는 국내 최초의 혼류 생산 시스템을 구축한 이곳은 국내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평가 받는다.
지난달 르노코리아는 판매 호조를 이어가던 ‘그랑 콜레오스’의 생산을 잠시 멈추고 공장 전체를 재정비하기로 결정했다. “생산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장을 멈춘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해진 제조본부장의 설명처럼 이번 설비 투자는 단순한 공장 개조가 아닌 미래차 전환을 위한 전략적 투자다.
한 달여 간의 작업 끝에 부산공장은 완전히 새로워졌다. 내연기관 차량만을 생산하던 라인은 이제 전기차까지 유연하게 생산할 수 있는 첨단 혼류 생산 시스템으로 탈바꿈했다. 이 본부장은 “그랑 콜레오스와 같은 내연기관 차량부터 내년 상반기에 출시될 하이브리드 모델 ‘오로라 2’, 그리고 올해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생산될 스웨덴 전기차 ‘폴스타 4’까지 모두 같은 라인에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장 내부에 들어서자 거대한 로봇 팔들이 쉼 없이 움직이며 차체를 조립했다. 순간적으로 불꽃이 튀는 용접 작업은 박진감을 더 했다. 자동차 생산의 첫 관문인 차체공장에선 이번에 추가된 145대의 로봇을 포함해 총 887대의 로봇이 정교하게 작업을 수행한다. 특히 새롭게 도입된 SPR(Self Piercing Rivet)과 FDS(Floor Drill Screw) 공법이 눈길을 끈다. SPR은 알루미늄과 강판 등 이종 금속을 결합하는 접합 방식으로, 최근 친환경차 제작 과정에서 필수적인 기술이다. FDS는 초고강도 강판을 조립하는 데 사용되는 나사 형태의 결합 방식으로, 차체 경량화와 강성 확보를 동시에 실현한다. 폴스타 4는 알루미늄 비중이 높은 차량이라 이 공법이 필수적이라는 게 르노코리아 측의 설명이다.
조립공장에서도 변화는 뚜렷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25% 가량 더 무겁기 때문에 기존 설비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섀시 행거와 차량 이동 장치 등 주요 설비의 하중 용량을 강화하고 전기차 전용 작업을 위한 보조 라인을 추가했다. 이 본부장은 “어떤 차종이라도 유연하게 생산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며 “공장 경쟁력 강화는 물론 회사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부산공장은 단일 라인에서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사례다. 과거에도 이곳은 SM3·SM5, 전기차 SM3 Z.E. 등 7개 차종을 동시에 생산하며 높은 유연성을 자랑했지만 이번에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열었다. 공장에서 만난 한 직원은 “그랑 콜레오스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서 “이제는 전기차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됐으니 공장의 경쟁력이 더 높아질 것”이라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르노코리아의 설비 투자는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로라3으로 알려진 차세대 전기차 모델의 개발과 생산까지 최종 확정되면 직접 생산 유발 효과 12조 원과 간접 생산 유발 효과 30조 원, 간접 고용 효과 9만 명 등 대규모 경제 효과가 창출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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