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을 잘 활용하면 반도체·자동차 등 한국 주력 사업에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는 국책연구원의 분석이 나왔다. 관세 조치가 한국뿐 아니라 중국·EU·인도 등 주요 산업 경쟁국에도 부과되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산업연구원은 17일 ‘미국 우선주의 통상정책의 주요 내용과 우리의 대응 방향’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서명한 ‘미국 우선주의 통상정책(America First Trade Policy)’의 세부 내용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 담겼다. 해당 행정명령에 따르면 미국의 재무부·상무부·국무부 장관과 통상·제조업 선임보좌관 등은 4월 1일까지 미국의 만성적인 상품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무역·산업정책을 보고해야 한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을 잘 활용하면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시장은 중국·EU·일본·인도 등에 비해 규모가 작아 미국의 수출 시장으로서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관세를 매개로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은 줄이고 미국의 대한(對韓) 수출을 늘리는 ‘무역전환효과’를 노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반면 중국이나 유럽 시장을 상대로는 무역전환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특정 품목에 대한 표적 관세를 실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 한국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가지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산업연 관계자는 “미국의 조치는 주로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반도체·바이오·배터리 등 전략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을 둔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평균 관세율이 낮은 데다 불공정 무역 행위가 적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무역 보복을 받을 여지가 경쟁 국가들에 비해 적다는 의미다. 산업연 관계자는 “대한민국은 수많은 교역대상국과 무역 협정을 맺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 많은 분쟁을 거치며 무역제도를 발전시켜 왔다”며 “한국은 상품 무역 개방도가 높고 불공정 무역행위 수준이 낮다고 평가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준 산업연 경영부원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정책이 한국 기업에 기회 요인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업연은 “강대국 정책에 따른 피해 분석과 이를 회피하기 위한 대안 마련이라는 수동적 접근에서 벗어나 우리 산업이 도약할 방안을 마련한다는 능동적 접근을 강화해야 한다”며 “대한민국에 보다 나은 국제분업구조가 되도록 신 산업·통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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