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설거지를 하다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역사는 누가 이끌고 올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총균쇠’의 저자인 제러드 다이아몬드, 지그문트 바우만 등 석학 11명을 인터뷰하면서 ‘문명, 그 길을 묻다’로 연결됐죠.”
제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적인 석학들과의 인터뷰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사진)은 ‘연쇄적으로 질문을 발굴하는 사람’이다. 매번 질문이 찾아올 때 이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는 새로운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민주주의의 새로운 흐름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등 3부작의 기획 대담 시리즈가 탄생한 게 그 예다.
최근 서울 북촌에 위치한 김영사에서 만난 그는 “석학들로부터 ‘현답’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체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사실 한 시간 동안 나만의 독선생을 만나는 기회를 한국의 독자들을 대표해서 얻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 글을 읽을 사람의 마음 속에 차오르는 질문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요. 확실한 건 그 질문은 내 것이 되어야 해요.”
팬데믹이라는 위기를 거치면서 안희경이 꽂힌 질문은 세계화의 붕괴다. 위기는 약한 고리가 흔들리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보는데 민족주의가 득세하면서 나타난 약한 고리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였다. 전 세계 석학들을 찾아나서는 대신 이번에는 사회의 가장 낮은 곳으로 눈을 돌렸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고려인 청년 아나스타샤,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온 조선족 홍리, 순천의 이주노동자 하안 빈 등 다양한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만나면서 ‘인간 차별’이 탄생했다.
그가 ‘인간 차별’에서 다루는 차별은 악의가 있는 말에 있기 보다는 무신경의 결과물일 때가 많다. 이주노동자에게 출신 국가에서 불리는 이름의 발음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국식으로 바꿔서 마음대로 부른다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혼혈 아동에게 다짜고짜 영어로 말을 거는 것도 해당된다. 그때 상대가 받을 수 있는 상처는 이렇다. “당신의 세계에는 나 같은 한국인이 없군요.” 이렇게 배제와 소외가 쌓인다. 한국에서 한 방송사의 PD로 활동하며 일정한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생활을 향유했던 그가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이주민으로 살게 된 것도 소수자로서 정체성 투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이제 과거 뭉툭했던 차별 감지 레이더를 더욱 정교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인종, 출신 국가, 성별 뿐만 아니라 경제력 등에 따라 차별은 더욱 다양한 양상을 띄고 있다는 것. “차별은 인종에 연동되는 게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어디에 속하는지가 더욱 크게 연동됩니다.”
그는 라틴계 3세들이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고 미국 내에서 출생한 이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경제적 위치에 따라 후발 주자에 대한 차별을 일삼는 것”이라고 했다. 또 “트럼프가 가장 약자인 불법 이민자에게 분노와 혐오를 돌린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이민자의 비중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자이자 다수인 여성에게 혐오가 향하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차별 문제는 변화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회의 마음이 바뀌면 사회 속 압력을 받는 개인의 마음은 변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웃처럼 실체 있게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구로에서 사는 이들은 중국인에 대한 감정을 물으면 이런 점이 싫다는 등 구체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 나오는데 강남에 사는 이들에게 물으면 ‘차별하면 안 되죠’라는 답이 돌아와요. 실제로 부딪힐 일이 없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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