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장기 부진에 빠진 내수를 되살리는 데 방점을 찍고 추가경정예산 편성 작업을 벌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건전성을 최우선 목표로 정부 재정을 운영해왔지만 계엄 이후 정치 불안과 제주항공 참사 등이 겹쳐 소비심리가 꺾이자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재정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과거부터 재정을 활용한 적극적 경제정책 운용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상반기 내에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적기에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 경제는 이미 호흡기를 달아야 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라는 게 주요 기관들의 분석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0일 내놓은 경제동향 2월호에서 “우리 경제에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에 이어 2개월 연속 같은 진단이다. KDI는 “생산 증가세가 완만한 수준에 머무른 가운데 대외 여건 악화로 경기 하방 위험이 높아지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경제 충격의 여파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미국 신정부 출범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 확대까지 더해면서 경제심리가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정국 불안에 따른 가계심리 위축으로 소비 부진이 지속되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품목에서 소매판매 감소세가 확대되는 등 상품소비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 12월 소매판매(-3.3%)는 승용차(-11.5%), 가전제품(-7.5%), 의복(-1.3%), 차량연료(-5.0%) 등을 중심으로 부진했다. 계절조정 전월 대비로도 0.6% 감소했다. 서비스 소비도 주요 업종에서 감소세가 확대되는 등 지지부진한 흐름을 나타냈다. 정국 혼란, 여객기 참사 등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으로 숙박·음식점업(-2.8%), 예술·스포츠·여가관련서비스업(-8.7%) 등 소비와 밀접한 서비스업의 생산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1월 소비자심리지수도 전월(88.2)에 이어 기준치(100)를 크게 하회하는 91.2에 그쳤다.
투자 쪽에서는 건설투자 부진이 지속됐다. 12월 건설기성(-8.3%)은 전반적으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건축부문(-6.8%)은 주거용과 비주거용 모두 감소세가 이어졌으며 토목부문(-11.4%)도 감소 폭이 확대됐다.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해외 주요 기관과 투자자들도 비슷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 전망에 대해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 지속과 미국 신정부 정책 변화 등으로 하방 리스크가 우세할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정치적 불확실성 장기화는 투자·소비 심리에 악영향을 미치고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방 리스크가 커질 경우 4월 세계경제 전망 발표 때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2.0%에서 추가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시각은 더 부정적이다. 국제금융센터가 지난해 말 집계한 글로벌 IB 8곳의 올해 한국 성장률 평균 전망치는 1.7%로 정부 전망치(1.8%)보다 낮다. 미국 모건스탠리의 경우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5%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한국의 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이유로 “수출이 하향 주기에 접어들고 있고 침체된 (경제) 심리와 모든 경제 부문의 활동 둔화로 인해 소비 회복이 지연될 것”이라며 “한은이 지난해 4분기 기준금리를 두 번 인하했지만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기까지 앞으로 3~4개 분기가 더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임금 상승과 민간 부문 고용 활동이 약해질 것으로 보여 가계 소득에도 제약이 가해져 소비의 전반적인 회복세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추경의 핵심이 내수 회복을 통한 경기 부양인 만큼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지원에 초점을 맞춘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과 같은 불경기 상황에서는 민생지원금 등 현금성 지원도 효과를 볼 수 있는 만큼 소득 수준에 따라 선별적으로 고려해볼 만하다는 얘기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은 자영업자의 매출을 늘려주는 방향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온누리상품권, 바우처, 할인 행사 등에 재정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예산을 편성할 때 예상한 것보다 내수 경기가 더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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