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심해 가스전 1차 시추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설전이 거세지고 있다. 야권에서는 ‘산유국의 꿈’을 말했던 윤석열 정부가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며 맹공을 펼쳤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실패론에 반박하면서도 정부가 사전 협의 없이 1차 시추 결과를 발표한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정부는 실패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자원개발은 정치적 화두가 될 수록 성공하기 어렵다며 이번 기회에 논란을 매듭짓고 중장기적인 시추·탐사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7일 진행된 정부 부처와의 당정협의 자리에서 “공직자들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잃고 있다”며 “각 차관이 적극적으로 인사 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1차 시추 결과 발표 전 여당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은 것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대통령실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6차 탄핵 심판 변론이 진행중인 가운데 대왕고래 실패 소식이 전해지자 불만이 들끓은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가 1차 시추 시료 정밀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사업 실패 여부를 발표하면서 정권과 거리두기에 나섰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 안팎에서도 이번 발표는 산업부의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정치색 빼기’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1차 시추 시료에 대한 상세한 분석 결과는 8월께나 나올 예정임에도 부처 차원의 결과 발표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종 발표를 미루는 공직 사회의 문법에서 벗어난 행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가 6일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대왕고래 발표 당시) 저희가 생각하지 못했던 정무적인 영향이 많이 개입되는 과정에서 (사업성에 대한) 과장된 비유가 부각됐다”며 사과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탐사 시추도 진행되지 않은 단계에서 자원 개발을 국정 전환 카드로 사용해 정무적 부담이 상당했다는 의미다.
야권은 연일 실패론 부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대왕고래는 정부·여당의 대사기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전문가도 아닌 대통령이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직접 발표하고 질문도 안 받더니 결과적으로 빵 터졌다”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역시 “바닥난 지지율을 채굴하려다 실패했다는 조롱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이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거론한 것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국민께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 어떻게 야당 눈치보기냐”며 “(국민의힘이) 공직자의 입을 틀어막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산업부는 실패론을 잠재우며 지속적인 자원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7일 복수의 방송 인터뷰에 출연해 “대왕고래에는 없지만 매장됐던 가스가 여기를 지나간 경우 옆에 있는 6개 유망구조 부근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1차 시추를 통해 확인한 결과 동해 가스전의 석유 시스템이 예상보다 양호했다는 점이 그 근거다. 석유·가스는 근원암에서 시작해 덮개암과 저류층 사이 공간에 고이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지층 구조를 ‘석유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안 장관은 “1차 시추공에서 경제성 있는 가스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나머지 사업이 실패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세계 최대 유전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유전은 14번째 시추공을 뚫었다”며 “국회에서 허락해 주신다면 정당하게 우리 예산으로 참여해 합당한 국부를 지키며 자원 개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원개발이 정치적 문제가 되면 성공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 사업에 ‘탈정치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학과 교수는 “지난해 윤 대통령이 대대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면 예산이 삭감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정치적 사안이 되면서 일이 오히려 복잡해졌다”고 진단했다. 과도한 정치화 탓에 관련 예산이 삭감되는 등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 사업 추진의 난이도가 더 올라갔다는 이야기다.
신 교수는 데이터에 기반한 중장기적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원 개발은 가능성을 믿고 오랜 시간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시추를 거듭할수록 시료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시추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1차 시추에서 탄화수소의 존재와 준수한 석유시스템을 확인했으니 이번 기회에 정치적 논란을 마무리짓고 나머지 6개의 유망구조도 탐사해 보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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