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인공지능(AI) ‘딥시크’의 정보 유출 논란에 국내 민관이 잇달아 차단에 나섰지만 중국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고민에 빠졌다. 중국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하거나 현지 판매 비중이 큰 기업들은 중국 당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일방적으로 차단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사업장은 딥시크를 차단한 반면 중국 사업장은 자율 결정에 맡기는 방식으로 시간을 벌고 있지만 국내외에서 정보 유출 논란이 커질 경우 차단 압박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7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128940)은 국내 법인의 업무용 PC에서 딥시크 접속을 차단했지만 중국 현지 법인인 북경한미약품은 자체적인 보안 시스템을 통해 정보 유출을 방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지난해 기준 북경한미약품의 매출은 3856억 원으로 한미약품 전체 매출(1조 4955억 원)의 약 26%에 달할 정도로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북경한미약품이 섣불리 딥시크를 차단했다가 중국 정부는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엘앤씨바이오(290650) 역시 다음 주부터 국내 본사에서는 딥시크 차단을 포함한 보안 강화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지만 중국 법인인 엘앤씨차이나는 현지 상황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대응 방안을 결정하도록 했다. 엘앤씨차이나는 엘앤씨바이오와 중국국제금융공사(CICC)가 합작한 법인으로 중국 중앙정부의 재생 의료 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현지 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제약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약 산업은 현지 약품 허가·승인 당국은 물론 병원·약국·소비자들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중국 사업 비중이 큰 제약사는 일방적인 조치보다 우회적인 대응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제조 비중이 높은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인 코스메카코리아도 한국 법인은 딥시크뿐만 아니라 모든 생성형 AI 프로그램 및 웹사이트 접속을 원천 차단하고 있지만 중국 법인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코스메카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술 정보는 한국 법인이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 법인으로 정보를 전달할 경우에도 제한된 정보만 공유하기 때문에 유출 우려는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는 기술 유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국내 법인뿐만 아니라 해외 법인에서도 모든 외부 생성형 AI 사용을 막는 보안 시스템을 적용해오고 있다.
중국 사업 비중이 큰 중소·중견기업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지만 일찌감치 생성형 AI 사용 방침을 마련한 대기업들은 글로벌 사업장에 동일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2023년 생성형 AI 지침을 마련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LG전자 등은 지역에 관계없이 동일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다만 아직 규정을 마련하지 못한 데다 최근 중국 사업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현대차(005380)·기아(000270)는 고민 중이다. 이날 오후부터 본사에서 딥시크 접속을 차단했지만 해외 법인들과는 협의를 통해 지침을 전달할 방침이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지침이 하달되기 전까지는 딥시크 접속과 검색은 가능하지만 파일 업로드는 차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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