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발(發) 충격에 31일 국내 증시가 새파랗게 질렸다. 저비용·고효율 인공지능(AI) 모델을 중국이 내놓자 AI칩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만드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 등 반도체 대장주뿐만 아니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전력설비주도 모두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구글·메타 등 미국의 빅테크들이 딥시크 출현으로 대규모 AI 투자에 신중한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감이 직격탄이 됐다.
반면 AI 후발 주자도 저비용으로 고성능의 검색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네이버와 카카오는 급등하는 등 희비가 갈렸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이날 낙폭은 무려 9.86%에 달했다. 지난해 8월 5일(-9.87%) 이후 최대 낙폭이다. 딥시크의 추론형 AI 모델인 R1에 들어가는 HBM이 고사양 제품이 아닌 HBM3인 만큼 HBM의 기술 주도권을 쥐고 있는 SK하이닉스 주가가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그대로 적중했다.
이날 지난해 4분기 실적을 확정 발표한 삼성전자도 외신에서 엔비디아향 HBM3E 8단 제품 승인을 받았다는 소식에도 하락을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낙폭은 상대적으로 작은 2.42%였다. 외국인은 두 종목만 1조 원 넘게 팔았다. 이날 현물 시장에서 외국인 순매도는 총 1조 2340억 원에 달해 지난해 9월 19일 이후 최대를 찍었다. 외국인은 선물에서도 3979억 원을 팔아 총 순매도 규모는 1조 6319억 원을 기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HBM 후공정 장비 기업인 한미반도체(-6.14%), 피에스케이홀딩스(-6.57%)를 포함해 대형 AI 인프라 투자의 수혜를 입었던 전력 기기 관련 기업인 효성중공업(-11.71%), HD현대일렉트릭(-7.87%), LS일렉트릭(-5.33%) 등도 줄줄이 추락했다.
그렇다고 딥시크의 충격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체 AI 모델을 구축하는 데 고비용이 들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네이버가 6.13%, 카카오가 7.27% 각각 올랐다. 특히 소프트웨어 관련 종목이 대거 들어간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종도 5.3% 상승해 대비를 이뤘다.
전문가들은 저비용·고효율 AI 모델이 AI 적용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보면서도 단기적으로 AI 관련 종목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러운 접근을 주문했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딥시크의 소식 이전에 AI 종목들의 고평가 논란이 있었기에 주가가 예민하게 반응해 큰 폭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당분간 주가의 변동성이 심할 수 있기 때문에 경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이 몰래 H100과 같은 첨단 AI칩을 제3국 경로를 통해 대규모로 들여왔든 아니면 수출이 제한되지 않은 저사양 칩으로 AI를 구현했든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 모두 미국 정부의 규제가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국내 메모리 업계 전반에 충격이 일정 부분 불가피할 것”이라고 짚었다.
중장기적으로는 AI 시장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진단도 있었다. 최승호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낮은 컴퓨팅 자원으로 고성능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면 소프트웨어의 상용화가 더 빨라질 수 있어 관련 기업을 주목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임지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오픈AI는 단기 수익 창출보다는 범용인공지능(AGI)과 같은 초지능 개발을 위한 장기 목표에 집중하고 있기에 미국 빅테크의 AI 투자가 과도하다는 주장은 섣부른 측면이 있다”며 “R1 등장으로 기업의 AI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어 다각도로 영향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관세정책, 제조업지표, 빅테크 실적 등 2월에 다양한 이벤트가 예정된 점도 투자 변수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중국 AI 기술이 저력을 보여준 만큼 항셍테크 주식에 대한 투자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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