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066570)가 이르면 올해 일본에서 12년 만에 세탁기 판매를 재개하며 백색가전 시장에 다시 진출한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와 스타일러 등 일부 가전제품만을 판매해 왔지만 품목을 더 늘리는 것이다. ‘외산가전 무덤’으로 불리는 일본 시장에서는 시간 절약 수요가 큰 맞벌이 부부를 겨냥한 고가 프리미엄 가전을 내세울 계획이다.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가전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연내 일본에서 세탁기 판매를 재개한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드럼세탁기 등 프리미엄 제품군 위주로 출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2020~2022년 대당 50만 엔(약 460만 원)대의 일부 고가 모델을 시험 판매하며 사전 시장조사 단계를 거쳤다. 그 결과 건조기 기능 등에 대한 일본 내의 수요가 확인됐다고 판단했다. LG전자는 세탁기에 이어 대형 냉장고 등 다른 대형가전 제품군 출시도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 가정에 맞는 크기와 디자인의 제품도 개발할 예정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올해 세탁기 판매 여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가전 판매의 품목 확대를 검토 중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외국 가전기업들이 고전하는 시장 중 하나다. TV를 제외한 가전시장 톱5 내에 한국 기업이 단 한 번도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 삼성전자는 2007년 일본 가전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고 LG전자도 일본 주거 형태에 맞춘 콤팩트한 중저가형대 백색가전을 판매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하자 2010년대 판매를 중단했다.
LG전자가 백색가전 진출을 다시 추진하는 것은 일본의 소비 패턴 변화다.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가격이 비싸도 건조기를 비롯해 가사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가전제품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일본 전기공업회(JEMA)에 따르면 일본 내 세탁기 평균 단가는 9만 5000엔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50% 올랐으며 점차 비싼 가격대의 가전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자국 브랜드 선호가 예전보다 약화됐다는 것도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영국 조사회사 유로모니터 조사 결과 일본 냉장고 시장에서 일본 브랜드 점유율은 2023년 60.6%로 2014년 70.4%에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국 브랜드는 15.7%에서 28.1%로 상승했다.
LG전자는 일본에서 현지화 전략을 펴며 일부 제품군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키워왔다. 일본 소비자들이 다른 나라보다 유독 TV 화질과 음향을 중요시한다는 점에 착안해 2015년 OLED TV를 출시해 성공했다. 지난해 1분기 LG전자는 일본 OLED TV 시장에서 11.4% 점유율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0%대를 넘겼다.
스타일러는 현지에서 계절성 꽃가루의 관리 수요가 높다는 점을 노리고 2017년 출시했다. 꽃가루 관리 모드의 탑재로 다음 연도 판매량을 2배 이상 끌어올리며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출시한 공기청정기 역시 꽃가루 관리 수요를 잡는 동시에 일본 캐릭터 기업인 산리오의 대표 캐릭터(시나모롤)를 적용한 한정판 제품을 내놓으면서 젊은층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LG전자뿐 아니라 중국 업체들도 일본의 고가 백색가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하이센스는 조만간 드럼세탁건조기와 대형 냉장고 등 판매를 시작한다. 드럼세탁건조기는 20만 엔(약 186만 원) 전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제품들의 가격은 대부분 100만 원 미만 수준이었다. 하이얼그룹은 연내 인터넷 접속 기능이 달린 에어컨을, 내년에는 드럼세탁건조기를 일본에 출시한다. 하이얼은 그룹 산하의 ‘아쿠아’가 옛 산요전기의 백색가전 사업을 계승해 관련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닛케이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일본 브랜드를 따지지 않는 소비가 늘고 있다”며 “고기능 가전 개척이 본격화하면서 일본 가전 시장의 판도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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