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요 로스쿨 상법 전공 교수 10명 중 7명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은 ‘회사’라고 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해외 상법 전문가들은 이러한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20일 한국경영인학회에 의뢰해 영국 케임브리지대, 미국 코넬대, 일본 히토쓰바시대 등 해외 주요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상법 개정안 관련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민주당이 지난해 11월 발의해 당론으로 채택한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기업뿐 아니라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필두로 대규모 상장사 집중 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이 담겼다. 민주당은 이르면 이달 개정안을 법사위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설문 조사에서 소속 로스쿨이 소재한 국가에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누구인지 묻는 말에 68%의 응답 교수는 ‘회사’라고 답했다. 이어 ‘회사와 주주(32%)’ ‘주주(8%)’ ‘회사·주주·이해관계자(4%)’ 순이었다.
한경협은 이에 대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은 ‘회사’라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일부에서는 영미법계 국가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설문에 응답한 대다수 영미법계 법학자들도 이사의 충실 의무 주요 대상이 회사라고 답변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영국·캐나다·호주 등 영미법계 국가로 분류되는 교수들의 응답을 살펴보면 이들 중 61%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라고 답했다. 이어 회사(33%)와 주주(11%), 회사·주주·이해관계자(6%) 순이었다.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외 주주와 이해관계자라고 본 응답자 중 28%는 그 이유로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일치하므로 회사와 주주의 구분은 형식적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회사와 주주 이익은 자주 불일치하기 때문에(16%)’ ‘소수주주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16%)’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한경협은 이러한 응답 결과를 놓고 해외 상법 전문가들도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해석했다.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는 뜻이다.
다만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소수 주주 보호에 효과적일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48%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소수 주주 보호에 효과적일 것’이라는 응답도 28%에 불과했다. 부정 의견이 긍정보다 1.7배 많았다.
한국에서 이사의 충실 의무 범위를 주주로 확장하는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서는 절반이 넘는 52%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한경협은 이와 관련해 “이사 충실 의무가 회사법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에 섣불리 법을 개정할 경우 기업 경영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뒤를 잇는 답변들도 ‘한국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36%)’ ‘이사의 주도적인 의사 결정을 저해할 것(28%)’ 등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사가 소수주주의 이익을 공정하게 고려하게 될 것(28%)’ ‘한국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8%)’이라는 긍정적 답변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캐나다 뉴브런즈윅대에서는 “일부 소수주주만 보상 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응답했고 일본 나고야 가쿠인대에서는 “한국 기업들은 유럽과 미국의 행동주의 투자자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다수의 해외 주요 로스쿨 교수들도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로만 한정하고 있다”며 “이사 충실 의무 확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배치되고 소송 증가 및 투자 위축 등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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