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 검체 채취를 위해 골막 천자를 수행한 전문간호사가 무죄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의료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는 서울아산병원이 전문간호사들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을 파기하고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2심을 진행한 서울동부지방법원이 사건을 다시 심리하지만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의료계 안팎의 중론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8년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가 서울아산병원을 고발한 데서 비롯됐다. 서울아산병원 혈액내과와 종양내과, 소아종양혈액내과에서 골수 검체 채취를 위한 인체 침습적 의료행위인 골막 천자를 간호사에게 시행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였다. 골막천자는 혈액·종양성 질환 진단을 위해 바늘을 이용해 골막뼈의 겉면(골막)을 뚫고 골수를 흡인하거나 조직을 생검하는 행위다. 의료계에서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침습적 의료행위이므로 환자 안전을 위해 마땅히 면허된 의사만이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간 사법부의 판단은 수 차례 뒤집혔다. 지난 2022년 이 사건의 1심 재판부는 의사가 종양전문간호사에게 지시·위임해도 불법이라 보기 어렵다며 서울아산병원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2심) 결과는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의사가 현장에서 지도·감독하더라도 간호사가 직접 골막 천자를 한 이상 진료행위라고 볼 수 있으며 침습적 검사인 만큼 진료보조행위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서울아산병원에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재판부의 판단을 또다시 뒤집은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얽혀 있는 만큼 이번 판결을 예의주시해 왔다. 간호사의 업무범위 규정과 처우 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은 의정갈등이 한창이던 지난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내년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다만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포함해 간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마련 등 후속작업이 남았다. 간호법 제정을 강력하게 반대해 온 의료계 입장에서는 이번 판결이 더욱 불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발 주체인 병의협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의료 전문성을 무시하고 의료인 면허 체계 근간을 흔드는 오판"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이날 오후 입장문에서 "대법원의 판결이 참담하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전문간호사라 할지라도 한 분야에 특정된 간호사 자격을 부여 받았을 뿐,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직접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의협은 "본질적으로 간호사의 면허된 업무범위는 의사의 지도하에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라며 "부위의 안정성, 단순 숙달 등을 이유로 면허된 범위가 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8월 간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의료전문지식이 없는 법원에서 의학적 판단이 아닌 정책적 판단을 할 수 있음을 극히 우려하고 있었다"며 "이 판결 또한 정책적 판단에 의한 것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향후에도 이런 논란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지난 10월 공개변론에서 '전공의는 검체 질이 떨어진다'며 간호사 전담을 두둔한 서울아산병원 측 참고인 발언도 문제삼고 있다. 군대에 경험 많은 병사가 있으니 사관학교를 설치하고 장교를 양성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잘못된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의협은 "재발 방지를 위해 '간호사 불법진료신고센터'로 "간호사 불법 행위를 고발하고 다른 직역의 불법 의료행위를 저지하겠다"며 "의료인 간 면허 범위의 근간을 해치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좌시하지 않고 엄중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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