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쇼크를 버텨낸 한국 증시가 탄핵 정국 연장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수출 둔화, 강달러 등 이미 대내외적 여건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길어질 경우 극도의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외국인과 개인 투자자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증시가 일시적 ‘패닉’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첫 거래일인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장중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종목은 총 953개로 집계됐다. 전체 상장종목 2631개의 36%에 달한다.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인 S&P가 "비상 계엄이 몇 시간 만에 해제됐고 한국의 제도적 기반이 탄탄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평가했음에도 시장이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탄핵 부결로 정치적 리스크가 장기화하면서 더 큰 하락세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증시 변동성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계엄령으로 한 차례 시장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된 영향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모건스탠리 등 많은 투자회사가 (탄핵표결 무산으로) 정치적 불안정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 금융시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앞서 지난 6일 "정책 결정의 효율성과 경제적 성과, 재정이 약화될 경우 (신용) 하방 위험이 늘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디스의 자회사 무디스 애널리틱스도 "비상 계엄 사태 후폭풍이 길어질 수록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정책 수혜를 받던 금융과 원전, 방산 등 테마는 하락세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금융주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며 연초부터 크게 상승했지만 계엄령 이후 급락했다. 정부가 추진하던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과 체코 신규 원자력 발전소 수출도 동력 상실 우려가 제기되며 관련 종목 주가가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탄핵 실패로 외인 탈출도 한층 빨라질 개연성이 있다. 외국인들은 비상계엄 선포 후 3거래일 간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 86억 원을 순매도했다. 일각에서는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만큼 외국인의 저가 매수 가능성도 있다는 기대도 나왔지만 현실은 달랐다. 시장 불확실성 때문에 일단 돈부터 빼는 상황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5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재평가를 위한 명확한 계기가 없는 한 (주가는)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콩계 증권사 CLSA는 “내년 한국 주식 투자 비중을 크게 줄여야 한다고 했다”가 그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첨언했다.
문제는 이미 우리 대내외적 여건과 증시 상황이 이미 좋지 않다는 점이다. 수출 둔화와 D램 가격 하락이 이어지며 한국 기업들의 실적 하향 사이클이 지속되고 있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강달러와 높은 장기금리, 관세 불확실성 등 역풍에도 더 많이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다. 하장권 LS증권 연구원은 "과거 두 차례 탄핵 정국 때는 코스피 기업의 수출 증가율이 확장 추이를 지속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지난 1월 고점 이후 둔화 추이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 탄핵 시기에는 4차 산업혁명 기대감과 반도체 업황 회복 사이클이 맞물려 경제 전망이 비교적 긍정적이었지만 현재는 저성장 우려와 함께 경제 펀더멘털이 위축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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