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28일 국내외 기관투자자, 학계, 법조계 인사들과 함께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촉구했다.
포럼은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한국의 자본시장이 활력을 잃고 경제가 신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가장 큰 원인은 기업들의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포럼에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도입 완수를 촉구하는 범 투자자 및 시민사회 일동’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는 총 109명이 이름을 올렸다. 법조인과 경영학·법학 교수, 국내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피델리티, 웰링턴, 슈로더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 관계자들과 네덜란드 등 연기금을 운용하는 전현직 해외 기관투자자들도 참여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올해 한국의 주가수익비율(PER)이 8배,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중국은 PER 10배, PBR이 1.4배를 기록했다”면서 “국내 증시는 최근 몇 달 간 중국보다 밸류에이션이 낮아졌다”고 꼬집었다.
지난 21일 삼성·SK를 비롯한 16개 그룹 사장단이 상법 개정에 반대하며 국회에 규제보다 경제 살리기에 주력해달라고 한 데 대해 “일각에서는 상법이 개정되면 기업가 정신이 훼손되고 행동주의 펀드나 외국 기관투자가들이 기업 경영권을 장악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블랙록, 뱅가드, 캐피털리서치앤드매니지먼트, 노르웨이 은행투자운영위원회 등이 전 세계에서 지난 100년 동안 독자적으로 이사를 추천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반문했다.
이 회장은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논문을 인용하며 “우리나라에서 선행돼야 할 과제는, 효율적인 경영자의 경영을 장려하고 비효율적인 경영자의 경영을 억지하는 방향으로 자본시장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 주장의 이론적·현실적 모순’이라는 논문을 통해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문제는 적대적 기업인수의 시도나 적극적 주주 관여가 너무 없다는 것”이라며 “주주 행동주의가 기업 가치를 훼손한다는 주장은 아무 이론적·실증적 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경험상 법조인 출신 이사들은 이사회에서 거의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는다”면서 “이사에게는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만 있어, 회사가 준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아무 일도 없이, 아무런 질문도 이의 제기도 안 해도 본인의 역할은 끝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포럼은 “침해되는 주주이익을 보호하지 않는 법으로 인한 자조적인 ‘국장 탈출’, 내수 침체와 경제성장 둔화의 악순환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면서 “빠르게 주식회사의 기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들은 상법 개정으로 이사가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지게 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가 해소되고, 고령화·저출산·부동산 자산 쏠림 등 수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해결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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