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3국 정상 간에 한일중 FTA 협상에 속력을 내자고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5개월이 넘게 후속 회의 날짜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도 한일중 FTA에 대한 경제성 재평가에 돌입하는 등 3국 간의 FTA 체결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예의주시하는 분위기이다.
2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5월 한일중 정상회의 이후 FTA 후속 협상 날짜를 잡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중국, 일본 측 카운터파트와 실무 접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측이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협상일을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일본이 미국을 지나치게 의식해 중국과의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에 역행하는 방향인 ‘중국과의 높은 경제 협력’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에 반도체·AI 등 첨단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까지 강화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중국과의 FTA 체결을 하는 것이 자칫 미일 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거기에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산의 모든 수입품에 대해 최대 관세 60%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관세 철폐를 목표로 중국과의 FTA에 나서는 것이 자칫 미국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점도 한일 양국이 직면한 딜레마라는 것이 우리 정부의 분석이다. 실제 한일중 FTA 협상이 중단된 것은 2019년부터로 미중 간의 패권 다툼이 본격화된 시기와 맞물린다. 한일중 FTA는 기존의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보다 훨씬 높은 시장 개방도를 보이고 있어 농수산물, 법률, 관광, 서비스, 게임 등 여러 분야에 대한 단계적인 관세 철폐를 목표로 한다.
반대로 중국은 한일중 FTA에 있어서 3국 중에 가장 적극적이다. 최근 경제난이 가속화되면서 경제적 돌파구 마련이 필요한 데다 미국 견제를 위해 한국과 일본을 중국쪽으로 끌어와 중국 견제망을 약화시키려는 포석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3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2013년 이후 12년째 FTA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2019년 11월 이후 5년 넘게 추가 협상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한일중 FTA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 내부의 속내도 복잡하다. 과거 한일중 FTA 협상 개시 전 2012년 경제 타당성 평가 당시에만 해도 한일중 FTA 체결시 우리의 실질 GDP가 5년 간 0.32~0.44% 증가하고, 장기적으로(10년) 약 1.17~1.45%까지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경제 타당성 평가가 이루어졌던 2012년과 현재(2024년) 사이에는 12년의 간극이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5월 한일중 정상회의 이후 5개월간 한일중 FTA에 대한 경제성 재평가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부 분석 결과 12년 전만큼 3국 간 FTA 발효에 따른 경제성이 나오지 않고, 국내 소·부·장 기업이 일본·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은 일본에 뒤지는 국내 소부장 기업 등에게 상당히 큰 부담이다”면서 “중국과도 기술력 격차가 거의 없어 생각보다 3국 FTA 효과가 크지 않아 고심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낮은 시장 개방을 유지하는 세계 최대 FTA인 RCEP도 일본을 포함해 우리나라가 참여하고 있는 데다 중국과 FTA 2단계 협상을 재개하면서 관광 등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도 연내에 진행될 예정이라 한중 FTA 협상만으로도 관광, 서비스 등 닫혀있던 중국 시장이 열리는 효과가 있다. RCEP, 한중 FTA를 통해서도 충분히 서비스 분야 시장 개방을 유도할 수 있어, 한중일 FTA의 효능과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거기에다 미중 관계 등 정치적 역학관계까지 고려하면 현 정부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한일중 FTA 타결이 매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내 한 통상 전문가는 “한일중 FTA가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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