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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부진에 또 30조 '세수 펑크'…"높은 변동성에 세수추계 어려워"

■ 2024년 세수 재추계결과 발표

코로나 탓에 세수추계 오차 커져

높은 반도체업종 의존도도 영향

추가 국채 발행 부정적인 정부

정책 통한 경기 대응 어려울 듯

국회 "재정 청문회 필요" 제안도

최상목(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세수 재추계 결과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반도체 업황 부진에 법인세수가 급감하면서 올해 약 30조 원의 ‘세수 펑크’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최대 규모인 지난해 56조 4000억 원에 이은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나라 곳간이 비면서 정부의 경기 대응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7일 기획재정부의 2024년 세수 재추계 결과’에 따르면 올해 국세수입은 337조 7000억 원으로 세입예산(367조 3000억 원)보다 29조 6000억 원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세수 오차는 8.1%로 전년(14.1%)보다 줄었지만 최근 4년간 오차 금액만 200조 원에 달한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해치는 국채 발행을 통한 추경 편성 대신 기금의 여윳돈을 활용해 세수 결손을 메우기로 했다. 연내 집행이 어려운 사업에 돈을 쓰지 않는 방식(불용)도 추진한다. 하지만 내수 부진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기금·불용 카드만으로 대응하기에는 결손 금액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 이전 재원도 자동적으로 줄어든다. 관련 법에 따라 내국세의 약 40%는 지방교부세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이전되기 때문이다. 단순 계산으로만 12조 원에 이른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4년간 세수 추계 오차가 반복된 상황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상장사 이익 29% 반도체 의존도↑…높은 변동성에 세수추계 어려워




2015~2019년 세수 오차율은 평균 5.3%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0~2024년의 평균 오차율은 12.3%로 확 뛰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세수 추계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참석해 “코로나19가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예측 불가능하게 전개되며 전 세계적으로 세수 오차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큰 폭의 오차의 원인으로 한국 경제의 높은 반도체 의존도를 꼽는다. 올해 상반기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별도 기준)이 전체 코스피 상장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에 달한다. 특히 반도체는 매출 증감률에 비해 영업이익 변동성이 높은 업종이라 업황 사이클에 따라 세수 수입이 더 요동치는 특징이 있다. 올해 세수 재추계 결과 법인세 오차율(-18.6%)이 소득세(-6.6%)나 부가가치세(2.8%)같은 다른 세목보다 유독 컸던 배경으로 해석된다.



경기 변동성 심화로 국내총생산(GDP) 예측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도 세수 오차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앞서 정부는 2023년도 국세수입 예산안을 수립하면서 경상성장률을 4.5%로 가정했지만 실제로는 3.4%에 그쳤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이러한 주요 거시경제 변수의 차이는 세목별 국세수입 예산안 편성의 전제가 되는 부동산 거래량, 기업 영업실적 등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도 대외 경기 불안으로 세수 오차가 커진 측면이 있다. 기획재정부는 교통·에너지·환경세가 올해 세입 예산 대비 4조 1000억 원(27%) 덜 걷힐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유류세 인하 조치가 예상보다 길어진 영향이 크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유류세 인하 조치가 현행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가정하기도 했다.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안팎으로 안정되기는 했지만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이 커 유류세 인하 조치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관세 오차율도 -21.8%로 예상됐는데 이 역시 물가 안정 측면에서 할당관세를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세수펑크’ 메울 수단 마땅치 않아…정부 “추경 계획 없다”


문제는 정부가 세수 펑크를 메울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추가 국채 발행은 전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지방에 내려 보내는 지방교부세·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줄이는 방안이 거론된다. 두 재원은 내국세의 약 40%를 차지해 이번 세수 재추계로 인해 12조 원 안팎이 삭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지방 재정 역시 악화일로라는 점이 변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국내 지방자치단체의 올해 평균 재정자립도는 43.3%로 2014년 세입 과목 개편 이후 역대 최저치를 보였다.

지난해 외국환평형기금을 20조 원가량 끌어 쓴 것처럼 여유 기금을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최 경제부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외평기금과 관련해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하는 것을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강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022년에 초과 세수가 상당했어서 지난해에는 돈을 끌어올 기금이 많았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정의 경기 대응력 약화… “재정정책 전반 뜯어봐야”


이렇다 보니 재정정책을 통한 단기 경기 대응 능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5%로 하향 조정했을 정도로 내수 상황은 녹록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올 상반기에 ‘상저하고’ 경기를 가정하고 재정의 60%가량을 조기 집행해 하반기에 더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이 운신할 폭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회에서는 재정 청문회 언급까지 흘러나온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재위에서 “재정정책 전반에 대한 기재위 차원의 공청회가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송언석 기재위원장(국민의힘 의원)도 “간사 간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정부는 주요 과세 정보를 관련 국책연구기관에 모두 공개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모형도 개발해 세수 추계 정확도를 높일 방침이다. 하지만 세수 추계 난도가 계속 올라가고 있어 재정 전략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예정처는 “초과 세수가 발생할 때 기금을 적립해 경기 침체기에 활용하거나 비관 시나리오에 따른 세수 부족분을 예비비로 편성하는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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