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달고, 더욱 풍부하다. 자세히 맡아 보면 구수한 빵 향도 감돈다. 쌀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곡물을 원료로 삼아서다. 한국 전통 술 ‘약주’ 얘기다. 권희숙 국순당 연구소 부장은 “쌀 만을 주재료로 삼으면서 주정을 첨가해 단조로운 맛을 내는 일본식 청주와는 차이가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지난 31일 찾은 서울 삼성동 국순당 ‘우리 술 아름터.’ 서른 명 내외의 참가자들이 주말 아침부터 전통주를 빚어보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약주와 청주를 번갈아 시음하는 눈빛은 시종일관 반짝였다. 저마다 강좌 내용을 사진에 담고 메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날 수강생들이 직접 만들어본 신도주(新稻酒)는 ‘햅쌀술’이다. 그 해 처음으로 수확한 벼로 백설기를 찐 후 누룩을 잘 섞어 빚어낸다. 조선 시대 차례상에 올리는 추석 명절식의 하나였다. 옛부터 위에 뜨는 맑은 술은 제사상에 바치고 아래 가라앉는 막걸리는 마을 사람들이 나눠 마셨다. 이 때문에 이웃 간 공동체를 유지시켜주는 매개물 역할도 했다.
재료는 의외로 간단하다. 백설기와 누룩, 밀가루와 물이 전부다. 알코올을 만들어내는 효모는 누룩이 품고 있다. 쌀을 분해시켜 단 맛을 만들어내는 동양권 술만의 재료다. 밀가루는 효모가 잘 자라게끔 단백질을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세대를 거듭한 시행착오 끝에 조상들이 발견한 지혜다.
작업은 설탕이나 소금을 넣지 않은 백설기를 잘게 찢는 데서 시작된다. 여기에 누룩과 밀가루를 섞고, 물까지 부어 넣으면 일단계가 끝난다. 이윽고 발효가 시작되면서 이산화탄소가 담긴 기포가 올라온다. 효모가 당을 먹고 활발하게 알코올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증거다.
제사상에 오르는 술인 만큼 관리법은 까다롭다. 여름엔 서늘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덥지도 춥지도 않은 25℃를 유지해주는 작업이 필수다. 매일 국자로 술을 저어 주고, 와인과 마찬가지로 햇빛도 피해야 한다. 양조를 시작한 지 3일이 지나면 고두밥과 물을 추가해 준다. 권 부장은 “한 번만 담그는 ‘단양주’도 있지만 두 번 이상 작업을 거쳐야 술 맛이 좋다”면서 “정성이 들어갈수록 고급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신도주를 만드는 데는 도합 열흘 정도가 걸린다. 문헌에는 맛이 ‘맵고 달다’고 표현돼있다. 도수가 꽤 있으면서 단 술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16도 내외의 맑은 약주는 위로 떠오른다. 아래로 가라앉은 부분은 찌꺼기를 곱게 걸러내고 물을 타 막걸리로 마신다.
사실 약주의 원래 명칭은 따로 있었다. 맑은 술이란 뜻의 ‘청주’였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식 청주에 이름을 빼앗겼다. 각 가정에서 정성스럽게 빚은 술로 차례를 지내는 전통도 자취를 감췄다. 일제강점기 주세 정책과 1960년대 양곡관리법에 직격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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