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본시장에서는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두고 있는 현대차그룹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차와 기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5조 1000억 원, 11조 6000억 원이었는데 이는 국내 1~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실용주의 노선을 걷는 정의선 회장 리더십에 주목하면서 현대차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향후 어떤 분야에 투자하게 될지에 관심을 쏟고는 한다.
현대차가 최근 설계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는 정 회장의 실용주의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차는 10년 전 사들인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에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 건설을 계획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십 층짜리 여러 동 건설로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건설 원가가 크게 절감된다고 한다. 정 회장이 모빌리티 본업 경쟁력 강화 외 다른 사업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지금의 현대차를 전 세계 톱 반열에 오르게 한 배경에는 내연기관에 대한 꾸준한 연구개발 투자가 있었다. 요즘 잇따르는 화재와 캐즘 현상에 브레이크가 걸린 모양새지만 결국 전기차의 대중화가 올 것을 의심하는 분석가는 많지 않다. 그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차가 향후 투자할 분야를 예측하고 있다.
첨단 제조업에 밝은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후발 주자인 현대차가 여기까지 올라온 건 내연기관 제조 역량을 훌륭히 내재화했기 때문”이라며 “현대차가 전기차 시대의 핵심인 배터리 제조를 내재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최근 SK가 배터리 자회사 SK온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선 상황을 떠올렸다. 실제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SK스페셜티 매각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수십조 원의 투자금이 필요한 SK온 지원책으로 평가받는다.
자본시장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SK온의 지분에 투자하고 배터리 제조에 직접 나설 수도 있다고 본다. SK의 상황이 더 나빠지면 현대차가 경영권을 인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급진적 관측도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 SK온은 현대차·기아로부터 2조 원을 차입한 바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배터리 제조사와 완성차 회사의 협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중국 배터리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두 거대 그룹이 협력을 강화한다면 경쟁력은 한층 제고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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