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011200)의 SK해운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 지위가 6개월여 만에 박탈되면서 매각 측과 인수 측의 계획에 모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최대주주 한앤컴퍼니(약 79%)는 투자금 완전 회수가 예상보다 길어질 것으로 보면서 매각 전략 재편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 업계에서는 HMM이 기존 계획했던 중장기 신사업을 추진하는 데 다소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매각 협상이 깨진 건 양측의 가격 눈높이 차가 컸던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HMM은 SK해운 내 LNG선 사업부를 제외한 원유운반선·LPG선·벌크선 사업부 등의 인수가를 최대한 2조 원대로 낮춘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매각 측과 IB 업계에서는 SK해운 전체 몸값을 4조 원대 수준으로 바라보며 협상에 임해왔다.
실제 한앤코와 매각 주관사 모건스탠리는 SK해운이 보유한 사업 경쟁력이 HMM의 판단보다 훨씬 높다고 판단했다. SK해운은 2018년 한앤코에 인수된 후 우량 화주와의 장기 운송 계약이 늘며 사업 구조가 더 탄탄해졌다는 분석이 많았다. 기존 SK그룹과의 계약 이외에도 현대오일뱅크·GS칼텍스·카타르에너지 등 국내외 우량 화주사와 신규 장기 운송 계약이 다수 체결됐다. SK해운의 2024년 말 기준 장기 계약(계약 기간 5년 이상) 비중은 87%에 달한다.
그 결과 SK해운의 영업이익은 2018년 733억 원에서 2024년 3957억 원으로 5배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도 2317억 원에서 6409억 원으로 두 배 이상이 됐다. 시황 변동성이 높은 스폿 사업을 축소하고 장기 계약 비중을 높인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SK해운은 해운 경기 사이클과 크게 관계없이 안정적인 실적 기반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HMM은 가격 외에 고용 방식 등 다른 조건에서도 매각 측과 다른 의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 3월 HMM의 선장이 최원혁 대표이사로 교체되며 인수가 원점에서 재검토된 것도 협상이 원활하지 않게 된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재명 정부의 공약 가운데 하나인 HMM의 부산 본사 이전 추진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HMM은 상당 기간 공을 들여온 SK해운 인수에 실패하면서 회사의 장기 투자 계획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HMM은 지난해 9월 장래 사업 공시를 통해 2030년까지 신사업에 23조 5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HMM은 현재 컨테이너선 쪽에 편중된 현재의 사업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벌크선이나 원유·가스운반선 등의 신규 인수합병(M&A)을 추진해왔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이 향후 컨테이너운임지수의 하락 사이클을 극복할 가장 좋은 전략이기 때문이다. HMM은 최근 H라인해운이 매각하는 4척의 벌크선 입찰에도 뛰어든 바 있다.
한앤코는 국내외 복수의 선사나 투자자들과 SK해운 매각 협상을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해운은 지난해에도 한국가스공사 등 화주사와 용선 계약이 만료된 다수의 LNG운반선·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들을 해외에 매각해왔다. 이 같은 분할 매각 방식은 물론 사업부 여러 개를 합쳐 통매각하는 방식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둘 것으로 예상된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앤코는 장기 계약 위주로 재편된 선박과 일부 사업부를 분할 매각하면 HMM 제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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