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다음 달부터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핀셋 규제’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주담대 증가에 따른 가계대출 확대가 이어지자 수도권 주담대 한도를 줄여 급증하는 가계대출과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집값을 동시에 잡겠다는 복안이다. 이번 규제가 강화되면서 수도권 지역 주택 매수 시 받을 수 있는 주담대 한도는 비수도권 대비 수천만 원 줄어들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2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권 간담회에서 다음 달 1일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예정대로 시행하되 은행권의 수도권 주담대에 대해서는 스트레스 금리를 0.75%포인트에서 1.2%포인트로 상향 적용한다고 밝혔다.
스트레스 DSR은 나중에 금리가 오를 것에 대비해 미리 대출 한도를 더 조이는 규제다. 1단계가 적용되는 이달 말까지는 스트레스 금리 하한인 1.5%포인트의 25%인 0.38%포인트를 은행 주담대에 적용한다. 2단계부터는 은행 주담대는 물론 신용대출과 2금융권 주담대에도 0.75%포인트의 스트레스 금리가 적용된다. 내년 7월 시행 예정인 3단계에서는 1.5%포인트가 적용된다.
정부가 수도권만 콕 집어 스트레스 금리를 1.2%포인트로 높여 한도를 조이기로 한 것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집값이 지방에 비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며 주담대 수요를 자극하고 있어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 서울 아파트 값은 직전 주 대비 평균 0.32% 올라 21주 연속 상승했다. 반면 지방 아파트 매매가격은 0.02% 떨어져 12주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수도권 주택 수요가 증가하며 시중은행 주담대는 이달 들어 보름 만에 3조 2000억 원 불어났다. 같은 흐름 속에 이달 14일 기준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월 말 대비 4조 2342억 원 늘었다. 특히 주담대가 3조 2407억 원이나 늘며 가계부채 증가를 이끌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수정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가 시행될 경우 차주들의 대출 한도가 수도권의 경우 4~13%, 비수도권의 경우 3~8%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연 소득이 5000만 원인 차주가 다음 달 비수도권 주담대(30년 만기 분할상환, 대출이자 4.5% 가정)를 받을 경우 △변동형 3억 200만 원 △혼합형 3억 1200만 원 △주기형 3억 2000만 원 등으로 한도가 책정된다. 스트레스 DSR 도입 전 한도(3억 2900만 원) 대비 900만~2700만 원 줄어든 수준이다. 같은 조건으로 수도권에서 주담대를 받을 경우 한도는 △변동형 2억 8700만 원 △혼합형 3억 300만 원 △주기형 3억 1500만 원 수준으로 종전 대비 1400만~4200만 원이나 한도가 줄어든다. 지역에 따라 한도가 최대 1500만 원까지 차이가 나는 셈이다.
연 소득이 커질수록 대출 한도 차이는 더 커진다. 연 소득이 1억 원인 경우 수도권과 비수도권 주담대 한도는 최대 3000만 원이나 벌어진다. 수도권 주담대 한도는 △변동형 5억 7400만 원 △혼합형 6억 600만 원 △주기형 6억 3100만 원으로 종전보다 2700만~8400만 원 줄어든다. 비수도권에서는 △변동형 6억 400만 원 △혼합형 6억 2400만 원 △주기형 6억 4000만 원으로 1800만~5400만 감소하는 데 그친다.
금융 당국은 스트레스 금리를 높여 대출 한도가 줄어들더라도 실수요자의 불편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DSR 37∼40% 수준의 차주들만 한도 축소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최근 대다수를 차지하는 고정금리(혼합형·주기형) 주담대는 스트레스 금리의 30~60%만 반영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울러 8월 31일까지 주택 매매계약을 체결한 차주 등에 대해서는 종전 규정(1단계 스트레스 금리)을 적용하는 등 경과 조치도 두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집값 상승을 이끌고 있는 수도권 지역 주택에 대한 대출 총량이 줄어드는 만큼 매매 수요가 다소 수그러들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다만 단편적인 추가 규제만으로는 가계대출은 물론 집값을 잡는 데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수도권 주택에 대한 대출 총량이 줄어드는 만큼 일시적으로 매매 수요는 다소 감소할 수 있다”면서도 “전세대출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이미 신혼부부 주택 공급이나 신생아 특례대출, 디딤돌대출 등 정책 대출 공급이 대규모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스트레스 금리를 조금 더 올린다고 매매 수요가 잡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 당국도 벌써 추가 대책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음 달부터 전세대출을 포함한 모든 가계대출을 대상으로 내부 관리 목적의 DSR을 산출하기로 했는데 이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경우 DSR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선제 조치 성격이 강하다. 은행권 주담대에 위험 가중치를 상향하는 카드도 검토되고 있다. 주담대 위험 가중치를 상향할 경우 은행들은 자본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가계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가계대출 추이를 면밀히 점검하고 필요시 DSR 적용 범위를 확대하거나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위험 가중치 상향 등의 추가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