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아파트 시세가 크게 오르면서 공사비 인상을 받아들이는 조합원들의 심리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공사비 증액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시공사와 공사비 증액 협상을 마친 A단지의 조합장은 14일 “아파트 시장이 상승기일 때 분양 일정을 맞추는 게 낫다는 조합 내 여론이 빠르게 형성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실제 올 들어 시공사와 공사비 증액을 놓고 갈등을 벌이다 증액에 합의한 서울 내 사업장만 고척4구역을 비롯해 △잠실 진주아파트 △홍제3구역 △청담건영(리모델링) △행당7구역 △신반포 22차 △이문3구역 등 7곳에 달한다.
올 초까지만 해도 공사비 인상에 반대하던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이 공사비 증액을 받아들이고 나선 가장 큰 이유는 되살아난 서울 부동산 시장에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최근 16주 연속 상승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 아파트 청약 열기가 뜨거워지는 데다 집값도 상승하고 있어 정비사업의 사업성이 증가했다”며 “공사비 인상으로 조합원 분담금이 다소 증가하더라도 일반 분양가를 인상해 조합원 부담을 최대한 낮추고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8년 만에 송파구 잠실에 공급되는 신축으로 주목받고 있는 진주아파트를 예를 들면 공사비 증액으로 조합원 분담금이 1인당 1억 원 가까이 늘어나는데 최근 상승한 아파트 시세를 고려하면 추가 분담금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잠실 진주아파트 인접 단지인 잠실파크리오는 이달 6일 전용면적 84㎡가 23억 7000만 원에 거래됐다. 올해 1월과 비교해보면 3억 원이 뛴 금액이다. 인근에 있는 잠실 대장주인 잠실엘스·잠실리센츠 등도 지난달 같은 평형이 26억 원대에 거래가 성사됐다. 잠실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최근 잠실 아파트 시세가 급등한 탓에 추가 분담금을 내더라도 수억 원의 시세차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공사를 중단할 정도로 조합과 시공사 간 극심한 갈등을 벌였던 대조1구역 재개발 단지 등도 다시금 공사비 증액 협상에 나서고 있다. 강북권 최대 재개발 사업인 은평구 대조1구역은 공사비 증액 등의 문제로 올 1월 공사 중단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최근 새로운 집행부가 선출되며 공사비 증액을 위한 합의에 나서기로 했다. 최근 공사 중지 현수막까지 붙었던 강남구 청담르엘도 롯데건설과 공사비 증액, 분양 일정 등의 협의를 최근 완료하고 조합원 총회를 앞두고 있다.
공사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우상향하고 있다는 점도 공사비 증액 협상을 앞당기는 데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공사비원가관리센터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주거용 건물의 건설공사비지수는 153.55로 4년 전인 2020년 3월(118.47)보다 35.08포인트 상승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공사비 증액 협상 이후 공사비가 낮아진 경우는 없다”며 “둔촌주공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공사비 증액 협상이 장기화될수록 이주비용 등 금융비용만 커지고 조합과 시공사 모두 손해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장 상승기에 협상을 마무리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가 발주 논란에 공공사업도 첫 삽을 뜨지 못하자 지방자치단체들도 공사비를 올려 발주하고 있다. 서울시는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GTX-A 환승센터) 사업이 공사비 문제로 5차례 유찰되자 올해 5월 공사비를 기존 2928억 원에서 3600억 원으로 672억 원 증액해 재공고에 나섰다.
반면 인근 아파트 시세가 크게 오르지 않은 재건축·재개발 단지 등은 여전히 공사비 증액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강북구 미아3구역이 대표적이다. GS건설은 올해 3월 미아3구역 재개발 조합에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322억 9900만 원 규모의 공사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재건축·재개발을 시작하는 조합의 분담금은 조합원당 5억 원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조합원들의 분담금 납부 능력이 정비사업 진행에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