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니마 아난드쿠마르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석좌교수가 2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개막한 ‘서울포럼 2024’의 기조강연에서 “AI를 활용해 거대한 물리적 현상을 시뮬레이션하고 최적화된 제품을 설계해 현실 세계에 가져올 수 있는 시대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라며 AI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강조했다. 그는 “첨단기술의 발전이 가속화할수록 물리적 한계 역시 가까워지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AI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난드쿠마르 교수는 딥러닝 상용화 초기인 2018년 엔비디아에 AI 연구 총괄 책임으로 합류해 언어 모델을 구축하는 등 지금의 생성형 AI 혁명을 이끈 주역이다. 그는 엔비디아 입사 전에는 아마존웹서비스(AWS) 수석과학자를 지냈으며 2017년 35세의 나이로 칼텍 최연소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세계 최초로 AI 기반 고해상도 기상 예측 모델을 개발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난드쿠마르 교수는 “광범위한 산업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AI 모델은 데이터로부터 학습하는 능력을 통해 성능을 스스로 끊임없이 개선해나간다”며 “각국이 첨단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AI 연구개발(R&D)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아난드쿠마르 교수는 먼저 한국이 집중해야 할 첨단산업으로 반도체를 꼽으며 AI와의 결합이 제품 경쟁력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의 반도체 제조 역량은 글로벌 국가들 중 가장 선두에 있다”며 “향후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는 역량을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R&D에 대한 추가 투자를 통해 발전을 가속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세공정 기술의 진보로 반도체 칩이 계속 소형화하면서 물리학적 한계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아난드쿠마르 교수는 “(반도체 업계가) AI 분야에서 R&D 투자를 확대해 디지털 트윈(현실 기계·장비를 가상으로 구현)을 구축하고 반도체 설계를 최적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소그래피(웨이퍼에 패턴을 형성하는 식각 공정)와 같은 고차원 물리학 공정을 AI를 통해 통합하고 시뮬레이션해 반도체 설계와 배치, 레이아웃 등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난드쿠마르 교수는 엔비디아에서 AI 연구를 총괄하고 칼텍에서 기상 예측 모델을 개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AI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AI를 활용하면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시뮬레이션하는 데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상 관측 시뮬레이션에 AI를 도입하면 기존 대비 속도를 1억 배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며 “이 경우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이 감축된다”고 전했다. 현재 그는 칼텍에서 R&D와 제품화 과정에 수반되는 값비싼 시행착오 비용을 줄일 수 있는 AI 시뮬레이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아난드쿠마르 교수는 “과학 및 공학 부문과 AI의 결합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언어와 시각 분야의 발전을 넘어서는 더 큰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AI 분야에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인재 육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아난드쿠마르 교수는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창의성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정부가 생애 교육 전 과정에서 AI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과 AI는 선택(or)이 아닌 공존(+)과 협력의 문제에 놓였다”며 “교육 과정은 AI를 활용해 주어진 과제를 더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AI 인프라 구축에도 서둘러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연구는 대규모 컴퓨팅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가 진행하는 언어 모델 개발에는 수천 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사용된다”며 “원자에서 행정 규모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서 AI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슈퍼컴퓨팅 시설을 구축하는 등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난드쿠마르 교수는 AI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규모 스타트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오픈소스 개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규모 범용 모델의 학습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적용·응용하는 차원에서 기존 규제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에게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검증 툴을 계속해서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언어 모델을 통한 상호작용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퀄리티’가 중요하다”며 “LLM에 대한 신뢰도를 궁극적으로 10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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