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의 신변 보호를 위해 지난해보다 3배 많은 비용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의 선봉에 서 있는 블랙록에 반대하는 운동가와 단체가 늘어나며 핑크 회장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블랙록이 제출한 임원 보수 공시를 분석한 결과 2023년 한 해 동안 핑크 회장의 자택 경호 비용으로 56만 3513달러를 지불했다고 밝혔다. 또 개인 경호비용으로 21만 6837달러를 썼다. 그의 신변 보호 비용으로만 78만 달러(약 10억 7600만원)를 쓴 셈이다.
FT는 “래리 핑크 회장이 ‘워크(woke)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반(反)워크(Anti-woke)’ 세력의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워크’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이른바 ‘깨어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워크 자본주의’는 이런 워크 정신을 기업 경영에 적극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한다. 다만 워크 자본주의가 붐을 일으키는 가운데 ‘주주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미국 보수주의자를 중심으로는 ‘반(反)워크주의’도 힘을 얻고 있다. 또 ESG 투자에 앞장서는 기업들이 앞에서는 인권을 외치며 뒤에서는 동남아 등에 공장을 세워 아동을 착취한다거나 이익 추구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반워크’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요소다.
블랙록의 경우 핑크 회장이 2020년 연례 서한을 통해 화석 연료에 대한 투자 철회 방침을 밝히며 ESG 투자를 확산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하지만 블랙록은 여전히 석유와 가스 기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블랙록은 ESG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과 “착한 척 하지 말라”는 환경운동가들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고 있다. 일례로 미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중 한 명이었던 비벡 라마스와미는 핑크 회장을 향해 “워크 자본주의와 ESG 운동의 왕(King)”이라고 비판했다. 또 기후단체 운동가들은 “블랙록이 탈탄소를 촉진하는데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며 그의 사무실 주변에서 시위를 반복하는 중이다.
한편 미국 주요 기업들은 최근 최고경영진에 대한 보안을 강화하는 중이다. 디즈니 CEO 밥 아이거는 2022년 83만 달러였던 경호 비용을 지난해 120만 달러로 증액했다. 디즈니는 미 중부 플로리다주가 2022년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동성애 등 성 정체성에 관한 교육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이른바 ‘게이라고 말하지 말라(Don’t say gay)’법의 입법을 추진하자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워크에 물들었다’는 공격을 받은 적 있다. 또 코로나 백신 무용론 등으로 보수진영에 공격을 받았던 화이자와 모더나도 2022년 CEO의 보안 비용으로 각각 80만 달러, 100만 달러를 지출했다. 전기차 기업 테슬라 역시 지난해 일론 머스크에게 약 240만 달러의 보안 비용을 지출했고 올해 첫 두 달 동안 50만 달러를 추가로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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