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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응급실 뺑뺑이 철통 방어까진…갈길 멀어

■대한뇌졸중학회 2024 춘계학술대회

심뇌혈관 네트워크 시범사업 두달

정부 투자 의지·취지 환영하지만

제어시스템 부재에 진료공백 우려

참여기관 늘면 보상 줄어 아이러니

차재관 동아대병원 신경과 교수가 20일 대한뇌졸중학회 2024년도 춘계학술대회에서 '심뇌혈관질환 문제해결형 진료협력 네트워크' 시범사업에 관한 의견을 발표 중이다. 사진 제공=대한뇌졸중학회




“문제는 콜(call·호출)이 몰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택시야 피크시간을 피하면 된다 치더라도 뇌졸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거든요. ”

20일 롯데호텔 제주에서 열린 ‘대한뇌졸중학회 2024 춘계학술대회’에서 차재관 동아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심뇌혈관질환 문제해결형 진료협력 네트워크 건강보험 시범사업’을 택시 호출 플랫폼에 빗대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주도로 3년간 진행되는 심뇌혈관 네트워크는 사업에 참여하는 불특정 다수의 의료기관에 콜을 발송하고 먼저 수락하는 곳과 매칭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택시 호출과 유사하다. 문제는 중앙에서 이를 제어할 시스템이 없다 보니 진료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차 교수는 “정부가 질병 부담이 큰 뇌졸중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점은 고무적”이라면서도 “정책의 실효성을 거두려면 (콜을 분산 관리할) 컨트롤타워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분초를 다투는 중증 및 응급 심뇌혈관질환에 대한 진료협력 네트워크가 본격 시작한지 2개월 가량 경과한 가운데 학회에서 만난 의료진들은 기대와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사업은 각 병원에 흩어져 있는 심혈관 중재의와 응급의학과·신경과·신경외과·흉부심장혈관외과 전문의를 묶어 활용함으로써 24시간 365일 응급 심뇌혈관질환 당직 체계를 구축하는 게 골자다. 전문의 소속에 관계 없이 신속한 의사결정과 이송을 통해 심뇌혈관질환 대응 소요시간을 단축하고 골든타임 내 최종 치료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둔다.

뇌졸중은 빨리 치료할수록 뇌 손상을 줄일 수 있는데 12년 동안 병원 도착 시간을 거의 단축하지 못했다. 배희준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팀이 18~50세의 뇌졸중 환자 7050명을 분석한 결과 증상 발생 후 병원 도착까지 시간은 2008년 8.4시간에서 2019년 8.0시간으로 제자리 걸음했다. 혈전용해제 투여율·혈전제거술 시행률 등의 치료 시행 지표가 좋아졌지만 사망률·기능적 회복률과 같은 치료 결과 지표들은 큰 차이가 없었다. 1년 내 재발률이 4.1%에서 5.5%로 오히려 늘어난 데도 이같은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형종 계명대동산병원 신경과 교수가 20일 대한뇌졸중학회 2024년도 춘계학술대회에서 '심뇌혈관질환 문제해결형 진료협력 네트워크' 시범사업 참여 경험과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대한뇌졸중학회


박형종 계명대동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이송 가능한 병원을 찾아 일일이 전화를 돌리는 대신 네트워크 활용이 가능해지고 온콜(전화대기) 당직에 대한 보상체계가 마련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환자가 원래 다니던 병원보다 더 먼 곳의 병원으로 이송되는 등 네트워크로 인해 현장시스템이 왜곡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뇌졸중 의심 환자가 119를 통해 특정 병원 응급실에 내원하면 병원 간 이송은 사설 앰뷸런스를 이용해야 한다. 즉 첫 병원에서 치료가 이뤄지는 게 골든타임 사수의 핵심인데 재관류치료와 수술 기준이 모호한 허혈성 손상의 경우 자칫 진료과 간 이견이 발생해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별 예산이 정해져 있고 한정된 파이를 나눠 먹는 사업 구조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네트워크가 많아야 시너지가 커질텐데 네트워크 참여기관이 늘어날수록 보상이 줄어드는 셈이라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 지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고 말했다.

김대현 부산 동아대병원 신경과 교수가 20일 대한뇌졸중학회 2024년도 춘계학술대회에서 ‘심뇌혈관질환 문제해결형 진료협력 네트워크’ 시범사업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대한뇌졸중학회


부산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대현 동아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최근 부산에서 급성 대동맥박리 진단을 받은 환자가 연달아 사망한 것을 두고 시범사업이 도마에 오르는 데 대해 쓴소리를 냈다. 부산에서 50대 대동맥박리 환자 사망 사건이 발생한 건 지난 3월 26일로 시범사업이 시작한 지 불과 한달 만의 일이었다. 당초 대동맥박리는 병원 전단계 시범사업에 포함되지 않았고 인적네트워크는 권역심뇌혈관센터 관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사건과 연관을 짓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배희준(왼쪽)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와 정통령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이 20일 대한뇌졸중학회 2024년도 춘계학술대회 정책 세션에서 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 제공=대한뇌졸중학회


김 교수는 “사업 시작 한 달만에 해결될 문제였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현행 제도상 응급 심뇌혈관질환 환자라 할지라도 수용 유무를 권역심뇌혈관센터에서 결정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궁극적으로 응급실 뺑뺑이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긴 호흡을 가지고 심뇌혈관질환 관리 강화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현장의 중론이다. 이날 학회에서 좌장으로 참석한 정통령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심뇌혈관 네트워크가 잘 뿌리내려 지역심뇌혈관센터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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