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서원주 인근 산자락에는 콘크리트 벽으로 이뤄진 고요한 성 같은 미술관이 있다. 건축 거장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이다. 최근 이곳에서 스위스의 현대미술 거장 우고 론니노에의 전시가 열렸다. 거장과 거장의 만남을 볼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서울 국제 갤러리 전속이기도 한 우고 론디노네는 오랜만에 진행하는 한국 전시를 위한 장소로 서울이 아닌 원주의 깊은 산 속을 선택했다. 백남준관 등 뮤지엄 산의 여러가지 공간이 자신의 작품이 전하는 철학과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번 투 샤인(Burn to Shine)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미래와 아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은 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전통 의식과 현대무용을 결합한 퍼포먼스 영상 ‘번 투 샤인’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2022년 아트바젤 파리 개막 전야제에서 처음 선보인 영상으로 ‘빛나기 위해 타오르라’라는 삶과 죽음에 대한 겸허한 고찰을 담고 있다.
실제로 많은 그의 작품은 ‘명상’과 ‘성찰’을 드러낸다. ‘우고 론디노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수녀와 수도승(nuns+monks)’ 작품은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백남준 관에 놓였다. 높이 4m에 달하는 노란색, 빨간색의 조형물은 마치 석굴암에 앉아 있는 부처나 중세시대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수도승의 모습을 모두 연상케 한다. 안도 다다오는 이 공간을 파주석으로 마감했는데 마치 처음부터 이 작품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원색의 조각이 잘 어우러져 있다.
수녀와 수도승은 뮤지엄 산의 야외 공간에도 6점이 놓여있다. 이 작품이 도심이 아닌 야외 공간에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m 높이의 형형색색의 작품들은 선사시대의 거대한 고인돌처럼 역사와 지구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수녀와 수도승은 작은 석회암 모형을 기반으로 해 청동으로 주조한다.
돌은 작가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재료이자 상징이다. 방탄소년단의 RM이 인증사진을 남기기도 한 2016년 네바다 사막에 설치한 ‘세븐 마운틴’이 대표작이다. 지난 8일 뮤지엄 산에서 만난 우고 론디노네는 돌에 대해 “자연석을 아름다움과 사유의 대상으로 탐구하고 감상하려는 시도로, 보는 이로 하여금 바깥 세상과 내면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명상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색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빛의 공간’이라 명명된 이 공간은 미술관의 유리벽을 빨간색, 노란색 셀로판지로 가리고 ‘시계’와 ‘창문’ 연작을 전시했다. 공간은 아침, 낮, 석양이 지는 오후에 시시각각으로 다른 외부의 빛을 흡수해 셀로판지와 함께 미술관 내부에 뿜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획은 ‘아이들’이다. 작가는 전시가 열리는 지역의 어린이들을 초대해 이들이 그린 ‘세상에서 가장 큰 태양’과 ‘달’ 그림을 벽에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시장이 있는 원주의 3~12세 어린이 1000명이 참여한 프로젝트 작품은 뮤지엄 산의 상징인 ‘콘크리트 벽’으로 만든 또 다른 박스 공간에서 볼 수 있다. 관람객은 지상에서 80cm 정도 높이로 떠 있는 박스 공간을 들어가기 위해 어린이처럼 몸을 굽히거나 무릎을 굽혀 기어 들어가야 한다. 마치 어린이의 작품을 보기 위해 어른들의 눈높이를 낮추게 하는 느낌이다.
작가는 “미술관이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공간으로 머물러서는 안되고 편안하게 와서 작품을 볼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을 예술의 일부로 참여시켰고, 이번 작업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18일까지. 유료관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