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BOJ)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플러스 금리로 돌아서자 ‘엔화’ 매수가 빠르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인상에 따라 엔화 가치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보고 환차익을 노리는 ‘엔 테크(엔화+재테크)’족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금리뿐 아니라 다양한 경제 요인들이 환율을 결정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1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엔화 예금 합산 잔액은 이달 20일 기준 1조 2338억 엔(약 10조 8166억 원)으로 15일 대비 199억 엔(1748억 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엔화 예금 잔액은 15일 1조 2139억 엔이었으나 BOJ의 기준금리 인상을 하루 앞둔 18일에는 1조 2287억 엔, 인상이 결정된 19일에는 1조 2307억 엔으로 점차 늘었다. 올 1월 말 엔화 예금 잔액이 1조 1574억 엔, 2월 말 1조 2130억 엔으로 한 달 동안 555억 엔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가파른 증가세다.
올 1월 환전 수수료 무료 정책을 발표하며 은행권의 ‘환전 전쟁’을 불러일으킨 인터넷전문은행 토스뱅크에서도 엔화 매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기준금리 인상 발표 전날인 18일 토스뱅크 외화 통장에서 원화를 엔화로 환전한 액수는 258억 원이었으나 발표 당일에는 509억 원, 발표 다음날에는 574억 원으로 증가했다. 고객들이 사흘 동안 1341억 원에 달하는 엔화를 매수한 것이다. 토스뱅크 외화 통장의 경우 외화를 원화로 되팔 때 재환전 수수료가 없어 이자 부담 없이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 투자자들이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100엔당 800원대까지 내려갔던 ‘엔저 현상’이 19일 기준금리 인상으로 반전될 것으로 기대하는 투자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BOJ가 기준금리를 현행 -0.10%에서 0~0.1%로 상향하면서 엔화 가치 상승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올 초부터 토스뱅크를 필두로 하나·신한은행 등 주요 은행들이 앞다퉈 환전 수수료 면제 혜택을 제공하면서 투자자들이 부담 없이 엔 테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점도 영향을 끼쳤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엔저 현상 이후 환전 고객이 점점 늘어나다 최근 금리 인상 결정되고 향후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까지 생기며 매수세가 붙은 것으로 보인다”며 “수수료 부담이 사라진 데다 온라인을 통해 쉽게 환전이 가능하다는 점도 투자를 용이하게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엔 테크에 큰 관심이 쏠리면서 환투기 우려 역시 동시에 커지고 있다. 이에 토스뱅크는 다음 달 1일부터 외화 통장의 월 거래 한도를 30만 달러(약 4억 원) 상당 외화 금액에서 1억 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또 1회 거래 한도(1000만 원)를 없애고 하루 거래 한도를 1000만 원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엔화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 기준금리 발표 이후 원·엔 환율은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이 금리를 계속 올리면 엔화 가치도 올라갈 가능성이 있지만 이미 금리 인상에 대한 예상이 엔화 가치에 많이 반영된 상황”이라며 “시장의 시그널이나 일본의 경제 상황 등을 계속 지켜봐야 하겠지만 환율을 결정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엔화 가치 상승을 확신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최근 일본 경제의 좋은 흐름과 기준금리 인상이 화폐 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환율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고 결정 메커니즘 역시 매우 복잡하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