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수업 복습에 숙제까지 하려면 밤 10시도 부족하죠. 자습 명목으로 학원에서 새벽까지 공부할 수 있는데 선생님이 상주하면서 설명도 해주니까 사실상 수업이나 다음없어요.”
21일 오후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밤이 깊어가는데도 불 꺼진 건물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리는 ‘불야성’을 방불케 했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쏟아져나온 교복 차림의 학생들은 집 대신 스터디카페나 24시간 식당, 자율교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습실이 마련된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가방 없이 밖으로 나와 편의점에서 요깃거리를 산 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 시내 학원들은 오후 10시 이후 수업을 할 수 없지만 그 형태를 바꾼 불법 심야 교육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제신문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학원 심야 교습 적발 건수는 61건으로 집계됐다. 5개월이나 남았지만 지난 한 해 적발된 87건의 70%에 달한다. 2020년 50건에 그쳤던 심야 교습 적발 건수는 최근 5년 새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각 광역단체 교육감은 학원이나 과외 교습자의 교습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서울시는 2008년부터 조례 제8조에 교습 시간을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명시해 심야 교습을 금지해왔다. 경기도와 부산시 등 일부 지역도 오후 10시가 넘어가면 학원 수업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러자 강남구 대치동이나 양천구 목동 등에 밀집한 학원들이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다. 독서실이 대표적이다. 일부 학원들이 자체적으로 독서실을 만들어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키고 때로는 보강 수업까지 진행하는 것이다. 독서실은 관할 교육장의 승인을 받으면 자정 또는 다음날 오전 2시까지도 영업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스터디카페를 악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스터디카페는 학생들 사이에 독서실보다 더 인기를 끌고 있는데, 대법원 판례상 학원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보니 하루 24시간 운영이 가능하다. 교습소처럼 내부에 분리된 공간을 갖춘 일부 대형 스터디카페에서는 개인 과외는 물론 학원 강사들이 학생과 함께 방문해 수업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과외 교사 전 모(25) 씨는 “평일 수업은 대개 오후 9시 반에 시작해 자정을 넘겨 겨우 끝난다. 입시를 앞둔 고3 학생은 더 늦게 끝나는 경우도 많다”며 “학생 일정이 워낙 바쁘기 때문에 이 시간대가 아니면 과외를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심야에 수업을 받는 학생의 체력 부담이 크지만 ‘학원만으로는 불안하다’거나 ‘마무리는 개인 지도가 필요하다’는 부모의 생각 때문에 심야 수업을 강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게 전 씨의 설명이다.
이러한 불법 심야 교습은 대치동·목동을 넘어 신흥 사교육 지역으로 퍼지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들은 마포구 염리·대흥동과 송파구 잠실동 학원가를 비롯해 경기 성남시 분당구나 고양시 마두동, 하남시 망월동, 안양시 평촌 등에서도 심야 교습이 빈번하게 벌어진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단속을 강화해도 해결될 기미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름·겨울 시즌에는 방학을 맞은 학생들 사이에 특강이나 보강 수요가 폭증하면서 심야 교습이 공공연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심야 교습은 주로 내부 직원 또는 학생의 신고로 적발되는데 외려 심야 수업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보니 신고가 제대로 되지 않는 편이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학원법상 단속은 가능하지만 개인 과외는 누군가 신고하지 않으면 적발되기 어렵다”며 “현장에서 강사가 심야 과외로 신고돼 처벌된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학원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법무법인까지 등장했다. 불법 교습을 하다가 정지되거나 벌점 처분을 받자 처분 수위를 낮출 방법을 찾는 학원들의 수요를 겨냥한 것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지역 교육청들은 직접 단속에 나서고 있다. 대전동·서부교육청은 최근 학원 밀집 지역을 대상으로 불법 심야 교습 행위 단속을 벌였다. 부산동래·서부교육지원청도 학원 및 교습소를 상대로 지도·점검에 나섰다. 시민단체인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불법 사교육 신고센터 운영 등의 조치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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