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연일 가격인하 압박을 넣었지만, 식품업계는 ‘실상과 다르다’고 말한다.
발언 수위 높인 정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잡아 식품업계를 소집하는 간담회가 잦아진 가운데 정부 발언의 강도도 높아진 분위기다. 사실상 제품 가격 인하를 언급하고 있다. 6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최근 국제곡물가격이 2022년 고점 대비 절반 가량 하락했으나 밀가루·식용유 등 식품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국민 부담 완화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했다.
이어 다음 주에는 CJ제일제당·SPC삼립 등 19개 주요 식품기업 대표와 임원을 소집한 간담회가 열렸다.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원자 가격 상승기에 상승한 식품 가격이 원자재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지속 유지되는 것에 대해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며 “국제 원재료 가격 변화를 탄력적으로 가격에 반영해 달라”고 주문했다.
고점 대비 낮아진 국제 수치에
지난해 식품업계 호실적이 근거
지난해 식품업계 호실적이 근거
보도자료에서 농림축산식품부는 고점 대비 하락한 국제 수치를 언급하며 수위를 높였다. 2022년 크게 올랐던 국제 곡물 가격이 최근 들어 낮아진 만큼 식품업계도 이를 반영해 완제품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의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곡물가격지수는 113.8으로 집계됐다. 최고점이었던 2022년 6월 173.5 대비 34.4% 하락한 수치다.
한 차관은 또 “현재 코스피 상장 식품기업 37개사 중 23개사의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률이 전년보다 개선됐다”며 “소비자 관점에서는 그간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식품 가격을 인상했다면, 하락기에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식품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상은?
실상은 달랐다. 식품업계는 세계 곡물가격의 경우 2019년이나 2022년의 시점과 비교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각각 국제 원자재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사건인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시기다. 곡물가격지수는 이전까지 100선을 유지하다 2020년을 기점으로 크게 뛰었고, 고점에서 내려온 지금도 120선에서 형성됐다.
게다가 환율이 높은 상황이라 밀가루나 설탕처럼 수입에 의존하는 원재료의 매입 단가는 체감상 낮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은 2022년 중순 이후 줄곧 1300원선을 넘나들고 있다. 국제 설탕 가격은 주산지인 브라질에서의 작황 부진으로 최근 몇년 새 큰 폭으로 오르는 상황이다.
인건비 부담도 매년 가중되고 있다. 대형 제조사들의 임직원 수는 생산공장을 포함해 수만 명 수준에 달한다. 단체협상을 통해 임금을 결정하기에 인상율은 일반적으로 매년 물가상승률보다 높다.
여기에 지난해 실적이 악화된 업체도 있어 ‘그리드플레이션’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코스피 상장 식품기업 37개사 중 23곳과는 달리 나머지 14곳은 유지하거나 도리어 악화됐다. CJ제일제당과 하림지주, 대상홀딩스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다른 업계에 비해 낮은 3~5%선에 머물렀다.
라면·제과업체들은 이미 지난해 한차례 가격을 내리기도 했다. 더 이상의 여력은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다. 농심은 작년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각각 4.5%, 6.9% 인하했다. 삼양식품도 대표 제품의 출고가를 4~15% 내렸다. 이어 오뚜기와 롯데웰푸드, 해태제과도 이와 유사하게 가격을 낮췄다.
정부도 이를 알고 있다? 소비자 부담 ‘진짜’ 낮추려면…
일각에선 정부도 이 같은 업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고 추측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보도자료에서의 수위와 달리) 13일 간담회에서 가격 인하와 관련한 압박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제분업체들과 정부는 최근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B2C)하는 밀가루 가격을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현실화되더라도 기업 간 거래(B2B)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효과가 불충분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일견 효과적인 방향으로 보이지만, 밀가루를 직접 구비해두는 가정이 많아 봐야 얼마나 되겠느냐”면서 “실제 소비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는 라면이나 빵 등을 제조하는 식품사에 납품하는 B2B 거래에 손을 대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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