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조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쳐온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작년 1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긴축 기조 지속 기간을 ‘상당 기간’에서 ‘충분히 장기간’으로 수정하고 금리 동결 기조가 6개월 이상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BOE) 역시 지난해 12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인하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고 인플레이션에 대해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은 지난달 통화정책회의에서 예상보다 완화적인 기조를 보이고 향후 금리 인하에 나설 계획을 명확하게 암시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금리 인상 사이클은 사실상 종료됐고, 금리 인하에 대한 초기 논의를 시작했다고 인정했다. 미국 경제가 연착륙을 넘어 견조한 가운데 파월 의장이 주요국보다 이른 시점에 긴축 정책의 ‘피벗’(기조 전환)을 시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연준은 주요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만을 공식 목표로 설정하는 것과 달리 ‘이중 책무’(dual mandate)로서 완전 고용도 중요시하고 있다. 연준이 물가 안정을 어느 정도 확신하면서 고용 시장이 초과 수요에서 균형점으로 이동하자 통화정책의 중심이 물가에서 고용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으로 파월은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연준 인사들은 경기 하강을 경고하면서 실업률이 갑작스럽게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둘째로 파월 의장의 성향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파월은 과거 연준 의장들과 달리 경제학자가 아닌 월가 출신 변호사다. 그는 정치학과 법학 석사(JD) 학위를 토대로 투자은행(IB)과 공화당 집권 당시 재무부에서 주로 일했고, 칼라일 그룹에서 인수합병(M&A) 업무로 큰 돈을 벌었다. 이 같은 배경으로 오바마 정부에서 연준 이사로 지명된 파월은 트럼프 정부 때 의장자리에 올랐다. 유연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파월은 통화정책에 확고한 소신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말 바꾸기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시장은 평가한다.
끝으로 미국 연방 정부의 정책과 호흡을 맞추는 정치적 배경이 작용했을 수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3분기에서 4분기 초 장기 금리 급등에 따라 국채 발행에 있어 큰 불편을 겪었다. 올 해도 미 국채 발행 물량 부담은 지속돼 장기 금리 상승이 계속되면 재정 부담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결국 재무부는 작년 11월 차입 계획에서 장기물 발행 비중을 축소했고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례적으로 금리 인하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 시 파월의 재연임은 없다고 공언한 가운데 파월 의장은 올 초 자신을 연임시켜준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에 상대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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