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2박 4일간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18일 귀국했다. 대한민국은 이번 APEC행사 등을 계기로 향후 전 세계 경제·안보 흐름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주요국들이 지정학적 리스크 및 공급망 문제에 대한 공조에 나서겠지만 추가적인 악화를 저지하는 현상 유지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정세 흐름은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언행만 봐도 확연해진다. 시 주석은 APEC 개최에 앞서 15일(현지 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미중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간 군사 대화 재개에 합의했으나 아킬레스건인 대만 문제, 북한 문제에 대해 아무런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시 주석은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중일정상회담을 하면서도 대한민국은 지나쳤다. 시 주석이 이번 방미 기간 중 유독 한국만 ‘패싱(passing)’한 이유는 자명하다. 한국을 ‘약한 고리’로 여기고 의도적으로 외면함으로써 우리 정부와 국민들을 초조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미 동맹 강화, 한일 협력 복원의 틀에서 대한민국을 이탈시켜 대중국 포위망에 균열을 일으키고 종국적으로는 중국의 영향권 안에 굴종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왜 중국은 대한민국을 약한 고리로 보는 것일까. 올여름 만났던 한 고위 안보 당국자는 “중국이 한국을 얕잡아보는 것은 안보 차원에선 북한 문제를, 경제 차원에서는 낮은 자원·식량 자립도를 약점으로 잡아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의 위협은 강력한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주요 7개국(G7), 역내 우방들과 연대해 억지할 수 있지만 부존자원의 부족 문제는 우리 스스로 개척하지 않으면 영원히 중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으로서는 해외 광물 개발 및 동맹·우방 간 자원 파트너십 강화를 통해 숨통을 틔울 수밖에 없다. 마침 이번 APEC 행사를 계기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정상회의에서 ‘핵심 광물 대화체’를 구축하자는 합의가 이뤄졌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일본·호주·인도 등 14개국이 동참한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해외 광물 개발 사업에 재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사업 추진 기반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이명박 정부 시절의 대규모 자원개발 사업 손실에 있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정교한 리스크 분석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결과다. 이후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는 정부 기관들이 광물 개발 사업을 꺼렸다. 그 결과 한국의 자원개발 사업은 ‘잃어버린 10년’을 인고해야 했다. 가뜩이나 부족했던 자원개발 전문 인력과 조직·노하우·인프라는 더 위축되고 말았다. 광물자원공사는 광해광업공단으로 통폐합돼 폐쇄 광산 지역 복구 등에 집중했다. 지질자원연구원은 본연의 자원 탐사가 아닌 지진 위협 분석에 치중했다.
윤석열 정부는 무너진 해외자원개발 기반을 복원해야 한다. 정책 컨트롤타워와 제도 정비가 우선 과제다. 이를 통해 전문 인력 육성, 민·관 협력 복원, 기술·데이터 및 인프라 확충을 이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대통령실과 국회에 각각 자원안보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정책 방향 및 입법 밑그림을 그려보자. 행정부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국가전락자원본부(1급, 혹은 차관급)’를 두고 점진적으로 외청인 ‘국가전략자원청’으로 승격시키는 것을 제언해본다. 기술 연구 및 자원 탐사 데이터 확보는 지질연 등을 중심으로 하되 중장기적으로는 우주 자원까지 겨냥해 항공우주연구원 등도 참여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정책은 정부가 주도하되 사업은 민간이 주도하도록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국내 기업과 자본이 적극 나서도록 유인책이 필요하다. 유명무실화된 해외자원개발특별융자제도, 일몰 폐지된 세제감면제도 등을 실효성 있게 복원해야 한다. 민간 자본이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편승할 수 있는 전문 펀드나 컨소시엄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정책금융 등을 활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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