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등록금 준비해! 아들, 딸~ 엄마도 대학 간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15일 오후 1시. 일성여중고 3학년 학생들 250여 명 중 수능에 도전하는 96명이 빼곡히 모여 수험표를 배부받았다. 이날 시험 유의 사항으로 ‘돋보기, 보청기, 혈당 측정기 지참’ 등을 안내받은 이들은 모두 늦깎이 여성 만학도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중고교 정규 수업을 받지 못했지만 못다 피운 꿈을 이루기 위해 일성여중고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이번 수능에 응시하는 최고령 학생은 81세다.
입실 및 퇴실 시간, 부정행위 안내 등을 차례로 숙지하던 학생들은 “한문 시험까지 끝나면 오후 5시 45분”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워메”라며 탄성을 질렀다. “수능을 다 친 후 수험표 혜택을 여러 할인을 누리라”는 선생님의 말에 “창피해서 못 들고 다니겠다”며 수줍게 답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수능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직접 찰밥과 김, 빵 등 간단한 메뉴의 점심 도시락을 챙긴 뒤 오전 8시 10분부터 오후 5시 45분까지 시험을 쳐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 예정돼 있었지만 학생들은 모두 설레는 표정으로 수험표를 들고 웃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만학도 전형’이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지만 전공은 사회복지학과·조리학과·부동산학과 등으로 매우 다양한 편이다. 장학금을 받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배화여대 K푸드조리학과에서 성적우수장학생으로 합격 통보를 받은 뒤 수능을 치르는 3학년 4반 박원희(66) 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치는 한자 시험과 씨름을 하고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영어 단어가 적힌 종이를 꼭 쥐고 외웠던 시간이 기억난다”면서 “이제 수능을 치고 마지막 꿈인 대학으로 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한글과 영어 공부를 위해 학교를 찾았다가 수능까지 도전하게 됐다는 최고령 응시자 3학년 1반 김정자(81) 씨의 꿈은 미국에 있는 손자·손녀들과 영어로 자유롭게 전화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손주들이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그는 “호적상으로는 81세이지만 사실 올해 84세가 됐는데 공부는 잘 못해도 6년 동안 지각·결석·조퇴 한 번 하지 않고, 남들보다 일찍 학교에 왔다”면서 “수능을 치고 대학에 가면 손주들과 영어로 전화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건물 곳곳에는 형광색 조끼를 입은 고2 학생 30여 명이 응원 플래카드와 페트병 등을 들고 “엄마도 대학 간다! 일성여고 화이팅! 떡하니 붙어라!” 등의 응원 구호를 연신 외치며 힘을 보탰다. 3학년 1반 담임을 맡은 이정순 선생님도 “학생들이 한 과목당 100분이라는 주어진 시간 동안 앉아서 집중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높은 점수를 바라기보다 준비한 대로 시험을 잘 마쳤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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