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먼저 아랍에 와보신 적이 있어요. 1970년대 중동 붐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사막의 땅에서 일을 했었죠.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병원 건물 공사에 배관공을 했다고 해요. 저는 아랍이 처음입니다. 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버지와도 (마음 속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죠.”
인기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 황선미(60) 작가는 2일 중동 아랍에미리트(UAE)의 토후국 7개 중 하나인 샤르자에서 열린 ‘샤르자국제도서전’의 한국관 북토크 행사에 참여해 아랍 국가와의 인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일부터 시작돼 12일까지 열리고 있는 이번 도서전에는 전 세계 109개국이 참여했고 특히 한국이 중동 도서전 최초로 ‘주빈국’ 역할을 맡았다.
우리나라는 행사 ‘주빈국’답게 10여 명의 국내 시·소설·그림책 작가들이 함께하면서 각각 혹은 여럿이 현지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황 작가는 “아버지가 왔던 곳을 내가 왔다. 리야드는 못 봤지만 여기와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재미있는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황 작가는 “아버지는 (사우디에서) 일하면서 많은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에 월급에서 5000원을 떼서 제가 좋아하는 책을 사볼 수 있도록 용돈을 주라고 썼다. 나는 한 번도 못 받았다. 항상 어머니가 가져갔다”며 웃었다.
그는 이번 행사에 동행한 국내 작가 가운데 가장 많은 책이 아랍어로 번역된 작가다. 올해 UAE에서 번역된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를 비롯해 ‘푸른개장발(2021·UAE)’ ‘마당을 나온 암탉’(2017·레바논)’ 등 모두 3권이다. 한국문학번역원 집계에 따르면 한국 문학작품 가운데 겨우 43권이 아랍어로 번역됐다. 국가별로 UAE에서 4권이 번역됐는데 그중 두 권이 황 작가의 작품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황 작가는 UAE에 오기 전 한국에서 번역된 아랍어 책을 찾아봤다는데 별로 없었다고 전했다. 앞서 6월 샤르자가 서울국제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와서 책을 기증하기는 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모두 한국어 번역이 아닌 아랍어로 된 작품들이었다.
물론 이런 현상은 UAE에서도 마찬가지다. UAE의 최대 도서관이라는 ‘하우스오브위즈덤(House of wisdom·지혜의집)’에도 한국 책이 거의 없다. 다만 이번 행사를 계기로 황 작가의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한국어·아랍어)’ ‘푸른개장발(아랍어·영어)’ ‘마당을 나온 암탉(영어)’ 등 5종(두 권씩 모두 10권)을 포함해 한국 문학 총 39종(80권)이 기증됐다.
저자의 작품들이 아랍권에도 통한다는 지적에 그는 “지역을 넘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서사와 감정이 있는 듯하다”며 “문학작품들이 오고 가면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샤르자)=최수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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