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간 동안 정부 자금을 지원받은 소상공인들이 엔데믹을 맞은 지난해 이후 대거 폐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가 지급한 손실보상금을 수령한 후 저금리 융자 등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종료될 조짐을 보이자 가게 문을 닫은 사례가 상당한 것으로 보여 ‘모럴 해저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12일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 7월까지 3년 7개월 동안 소상공인진흥공단의 저금리 융자 지원 등 직접 대출 사업에 선정된 소상공인 86만 7151명 중 15만 3970명은 현재 폐업 상태인 것으로 집계됐다. 소상공인 정책자금은 2021년 5조 6000억 원, 2022년 6조 1082억 원(손실보상 선지급 예산 포함)이 투입됐다. 올해는 3조 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특히 방역 조치가 완화된 지난해부터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2020년부터 2021년까지는 폐업자가 1만 9514명에 그쳤지만 2022년에는 8만 4020명, 올 7월 기준으로는 5만 436명으로 13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정부 지원을 받은 소상공인 중 폐업한 사례의 87.3%가 엔데믹에 진입한 2022년 이후에 몰려 있는 것이다.
엔데믹 전환 이후 폐업자가 급증한 것은 정부의 각종 손실보상금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지급된 것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전체 대출 계좌 중 폐업자 대출 계좌 비중은 2020년과 2021년에는 5% 안팎 수준이었지만 2022년에는 10.1%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소상공인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시기에 대폭 늘어난 정부 보조금이나 저금리 대출 등의 혜택을 받으려면 사업 유지가 필수 조건이다 보니 폐업을 미루고 억지로 버틴 소상공인이 적지 않았다”면서 “앞으로는 가게를 다시 일으킬 의지와 역량이 있는 사업자에게 융자 지원과 대출 상환 유예 등의 지원을 집중하는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상공인들의 계속 사업 의지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팬데믹 이후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高) 위기와 더불어 전기요금·인건비·임대료 등이 동시에 오르며 사업 의지를 상실하는 경우도 많다. 금융권의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조치가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사실상 종료된 것도 생존이 아닌 폐업을 택하는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전남 구례시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선(54) 씨는 “코로나19가 끝나고 경제가 회복될 줄 알았는데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라는 악재가 찾아왔다”며 “여기에 전기세가 35% 이상 증가하며 어려움이 더욱 커졌다”고 하소연했다.
소상공인들의 추가 폐업을 막으려면 대출금리 인하 등 소상공인의 과중한 부담을 덜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박정선 전남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현재 정부의 정책자금은 신용대출이나 담보대출의 이자나 인건비를 겨우 보조받는 수준에 그쳐 재도약의 밀거름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회재 의원 역시 “코로나19 관련 대출 지원 사업의 종료로 더 많은 소상공인이 폐업의 길로 내몰릴 것”이라며 “30% 가까이 줄어든 중소벤처기업부의 소상공인 관련 예산부터 다시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광범위한 계층에 무작정 지원하기보다 재기 의지와 역량을 갖춘 소상공인을 집중 지원해야 정부 재정의 추가 손실을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과 핀란드 등의 사례처럼 역량이 있는 자영업자나 성실 실패자에게는 대출 만기를 대폭 연장해주는 조치가 추가로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소상공인 전문가는 “공공 금융기관의 대출금 일시 상환 등이 두려워 폐업을 지연시키면서 영업손실이 누적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원리금을 정상적으로 상환하고 있는 소상공인은 폐업을 하더라도 대출을 일시 상환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등 역량을 지닌 소상공인에게는 여러 혜택을 과감하게 부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