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정부에 1조 5000억 원 규모의 장애인 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긴축재정 기조하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예산 당국은 전장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 만큼 장애인 지원 예산을 둘러싼 정부와의 갈등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전장연은 지난달 기획재정부에 공문을 통해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2024년 예산·정책 요구안’을 전달했다. 내년도 예산안에서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와 특별 교통수단 운영비 지원에 각각 3조 1000억 원, 3350억 원을 편성해달라는 게 핵심이다. 해당 요구만 합쳐도 올해 예산보다 약 1조 4000억 원을 증액해야 하는 규모다.
또 전장연은 발달장애인 주간 활동 서비스 지원(2602억 원), 장애인 자립 지원 시범 사업(307억 원) 등의 예산 편성도 요구했다. 전장연 측 요구를 모두 합하면 증액 규모는 최소 1조 5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전장연은 “예산 없이 권리도 없다”며 “기재부는 장애인의 이동권·교육권·노동권 등을 동정이 아닌 예산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안 그래도 긴축재정을 위해 내년도 예산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는 마당에 특정 예산만 대폭 늘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올해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 사업에 편성된 예산의 경우 1조 9919억 원으로 지난해(1조 7405억 원) 대비 2514억 원 늘었다.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을 고려해도 전장연 측 요구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앞서 기재부는 올 3월 ‘2024년 예산안 편성 지침’을 통해 건전재정 기조하에서도 약자 보호 체계는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장애인 예산 증액률도 평년보다 높을 수 있다”며 “(그럼에도) 전장연 요구안은 현실적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장연은 요구안이 수용되지 않으면 시위 등 추가 대책을 강구할 방침이다. 전장연은 예산안 협의를 위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면담도 요청한 상태다. 추 부총리는 최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 일부 장애인 단체와 간담회를 가졌지만 전장연은 제외됐다. 이와 관련 기재부 측은 “추 부총리와 전장연 간 면담은 아직 계획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에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장연은 최근 기재부가 국회에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제출하는 9월 초까지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한편 전장연은 박원순 시장 당시 무분별하게 지원된 시민단체들의 보조금에 대해 전면 조사에 나선 서울시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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