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적으로 해병대를 독립시켜 육군과 해군, 공군, 해병대 ‘4군 체제’로의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해병대사령관도 4성 장군으로 진출시켜 국가를 위해 헌신할 기회를 부여해 해병대의 위상을 제고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밝힌 해병대 발전 공약이다. 이에 응답하듯 100만 명에 달하는 국내외 60여 개 해병대 예비역 단체들은 윤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며 힘을 실어줬다.
국방부장관 청문회 과정에서도 이례적으로 해병대를 독립시키는 4군 체계 문제가 거론됐다. 이종섭 장관 후보자도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해병대 입장과 해병대 사기 문제를 고려한다면 일면 타당성도 있다”고 응답해 국군의 4군 체계 전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사실 국군 초기에는 해병대사령관과 해군참모총장의 계급이 같았다. 1969년 1월에는 해군참모총장과 공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이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한 이후 1973년10월 7대 해병대사령관까지는 대장 계급이었다.
그러나 6.25전쟁에서 최초의 반격작전인 진동리지구 전투부터 ‘귀신잡는 해병’이란 명성을 얻은 통영상륙작전, 베트남 전쟁 참전 등 주요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해병대는 1973년에 해병대사령관 직책이 해군본부 제2참모차장으로 바뀌면서 독자적 의사결정 체제가 사라졌다. 그러다 1987년 11월 1일에 해병대사령부가 재창설 이후 꾸준하게 법령과 제도 정비를 통해 해병대사령부는 인사, 군사, 행정 차치권을 보장받아 왔다. 1998년에는 해병대 지휘구조 개선 일환으로 대한민국 국군 중장 가운데 최선임으로 중장 의전서열 1위로 올라섰다. 2019년에 군인사법 개정을 통해 해병대사령관이 4성 장군(대장)으로 진급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돼 군의 최고 지휘관인 합참의장과 연합사부사령관이 가능해졌다.
군 전문가들은 당장의 법적근거 마련 없이도 해병대사령관의 계급이 대장으로 격상되면 육·해·공군참모총장과 위상이 같아져 사실상 4군 체계라고 평가한다. 국군조직법은 조직을 육군, 해군 및 공군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작전 체계는 4군 체계(육·해·공·해병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해병대 독립을 위한 속도 내기에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대통령실에 보고한 국정과제 이행 계획(안)에 “중장기적으로 해병대를 독립시켜 4군 체계로의 전환 검토”라고 명시했다. 이르면 올 하반기에 관련 연구 용역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대 자체적으로도 지난 3월에 ‘명실상부한 국가전략기동군으로 해병대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중·장기적 4군 체제 전환 검토를 중심으로)’ 용역을 발주했다.
이들 연구용역을 통헤 △미래 안보환경에서 국방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현 체제와 4군 체제를 비교 분석 △4군 체제로 전환했을 때 전·평시 군 지휘체계 △한반도 및 주변국 안보환경 추세 등 해병대 임무·역할 분석 △군 조직개편·인력확보 방안과 장비·물자 확보예산 산출 등 4군 체제 전환에 대한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다.
올해 해병대가 4군 체계 위상의 대우를 받는 관련법 개정도 있었다. 기존 해병대는 해군에 소속돼 있어 해병대 조직 전체를 상징할 수 있는 군기(軍旗)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3월에 개정된 ‘군기(軍旗)령’ 시행으로 해병대기(旗)가 정식 군기 종류로 포함되는 법적 지위도 얻었다. 대내외적으로 각종 행사 등에서 해병대를 대표할 수 있는 기(旗)를 공식적으로 사용이 가능해졌다.
해병대 자체 항공부대가 없어진 지 48년 만인 2021년에는 항공단도 창설했다.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 해병대 항공단 창설식을 열었다. 항공단은 기동헬기 2개 대대와 공격헬기 1개 대대 등 3개 비행대대와 관제대, 정비대로 구성된다. 전시 상륙작전 임무 투입, 국가전략도서 방어, 신속대응작전, 재해·재난지원 등 다양한 작전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군 전문가들은 한국 해병대를 미국 해병대처럼 ‘국가전략기동군’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해병 2사단을 전방에 붙박이로 배치하지 않고 해병 1사단처럼 후방에 배치해야 전략기동군 임무를 하게 하거나 육군이 주로 수행하고 있는 해외파병 주 임무를 해병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 해병대의 주임무인 상륙작전에 대한 ‘변화무쌍한 합동성’을 갖춰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적 해안에 병력을 투입해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상륙작전은 고대 그리스와 바이킹족의 시대나 통하는 기습 공격으로 첨단무기가 넘쳐나는 현대전에서 대규모 강습상륙작전은 매우 어렵고 피해만 크다고 지적한다.
계 최강인 미 해병대를 비롯해 군사 선진국들은 대규모 상륙작전 보다는 초소형 보트와 드론, 무인함정, 수송기와 헬기를 사용하는 일종의 ‘후방 기습 전문부대’로 탈바꿈 중에 있다. 단순히 해병대가 바다를 통해 배로 상륙하지 않는 것 말고도적을 마비시키고 타격할 수 있도록 아군의 특수부대 침투를 지원하는 육군의 헬리본 부대와 공군의 수송기를 사용한 합동작전을 통해 바다, 하늘, 땅으로 기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병대가 과거처럼 ‘배에 타는 보병’이 아닌 ‘기습공격의 지휘자’로서 활약하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군 소식통은 “현 정부가 해병대 독립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 마련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며 “해병대사령관이 능력만 인정 받는다면 그 일환으로 해병대 대장 출신인 미국의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부 장관이나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처럼 진급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