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고시 합격 후 운명적으로 사법고시에 추가 합격을 했습니다. 사법연수원에서 공정거래 수업을 처음 접한 뒤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역할에 반해 공직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20년 동안 쌓은 전문 지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외 기업결합(M&A) 등 분야에서 신뢰 받는 변호사로 우뚝 서겠습니다.”
황윤환(사법연수원 32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26일 서울경제와 만나 공직자에서 변호사로 새출발하게 된 게 본인으로서는 ‘운명적’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걸어온 길 하나하나가 변호사로서 전직하게 되는 ‘연결고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황 변호사는 26살의 나이에 행시와 사시를 동시 응시했다. 행시는 합격했다. 하지만 사시는 불합격이라는 쓴잔을 마셨다. 그런데 얼마 뒤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사시도 합격했다는 연락이 전해졌다. 제 42회 사법시험 문제에 대한 수험생들의 이의제기가 받아 들여지면서 복수 정답이 인정돼 추가 합격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경쟁법의 ‘태두(泰斗)’로 꼽히는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전문 특강을 듣고 운명처럼 공정위에 빠져들게 됐다. 당시 특강이 황 변호사가 20년의 세월을 공정위에서 매진하게되는 계기가 된 셈이다.
황 변호사는 “자유시장 경제 체제에서는 공정위가 시장경제 전체의 파수꾼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만큼 공정위에 합류해 우리나라 시장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법조계로 직행하는 것보다 물질적 보상은 적을 수 있으나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진로를 공정위로 선택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기에는 평생을 공직에서 몸 담으셨던 아버지의 영향도 한 몫했다.
황 변호사는 공정위에 들어가 수습을 떼자마자 이황 서기관(현 고려대 로스쿨 교수) 등 쟁쟁한 선배들과 글로벌 기업 A사의 ‘끼워팔기를 통한 시장지위적 남용 사건’을 맡게 된다. 황 변호사는 “공정위가 만든 최초의 TF였는데, 추운 겨울 난방이 되지 않는 쪽방에서 밤새 야근을 하다가 다들 감기에 걸리는 등 열악한 상황이었음에도 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 좋은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해당 케이스는 다국적 글로벌 기업에 대한 모범적 공정거래법 적용 사례로 지목됐고 황 변호사는 2005년 공정위로부터 ‘올해의 공정인 상’을 수상한다. 능력을 인정받은 황 변호사는 동아제약과 해외 제약사 B사와의 복제약 합의 사건에서 TF 팀장을 맡았다. 특히 당시 도출한 결과는 특허권 남용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황 변호사는 공정위의 ‘꽃’으로 불리는 중요 부서인 기업결합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SKT-T브로드, LG유플러스-CJ헬로비전 기업결합 사건을 총지휘했다. 약관심사 과장으로서는 글로벌 초대형 OTT 기업의 환불 약관을 바꾸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가 자타공인 공정위 업무에 정통한 실력자로 꼽히는 이유다.
황 변호사는 20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 이유로 ‘도전’을 꼽았다. 공정위에서 수십 년간 쌓은 경험과 전문 지식을 민간분야에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면서 전직이라는 선택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특히 국내 대형 로펌 가운데 율촌을 선택한 건 우리나라 공정거래 분야 1세대 법조인이자 개척자인 윤세리 명예 대표 변호사의 영향도 컸다고 언급했다.
황 변호사는 “조사 심사와 심결, 송무를 전부 실전으로 경험해봤다. 공정위 조사나 자료 요청 등이 구체적으로 왜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내부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있다는 게 엄청난 자산”이라며 향후 업무에 대한 자신감도 드러냈다. 다만 황 변호사는 퇴직 후 1년이 되지 않아 사건을 직접 수임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껏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 등부터 차츰 업무를 시작한다. 우선 한국공정경쟁연합회가 오는 11월 황 변호사를 초빙해 기업 결합 관련 전문 강좌를 연다. 또 그는 미국 대형 로펌 파견 근무과 ICN 연차총회 한국 대표단 실무 참여, OECD 대한민국 정책센터 경쟁정책본부 부원장 등 글로벌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외 기업결합을 망라한 전문가로서 활동할 계획이다.
황 변호사는 “감독자에서 이제는 변호사로, 클라이언트들이 헌법상 보장하는 정당한 방어권 행사를 도울 것”이라며 “작은 사건이든 큰 사건이든 구분 않고 고객에게 신뢰받는, 믿고 맡길 수 있는 변호사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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