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금지화목토천해’. 우리가 알고 있는 태양계 행성 순서입니다. 이 가운데 화성은 지구와 비슷한 행성으로 주목을 받고 있고, 목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으로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대부분 화성 다음에 위치한 게 목성으로 알고 있는데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작은 천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세레스(Ceres)’입니다.
세레스는 1801년 1월 1일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주세페 피아치가 발견했습니다. 당시에는 행성으로 분류됐는데 1845년 태양계에서 다수의 소행성이 발견되면서 세레스도 소행성으로 분류됐습니다.
태양과 같이 스스로 빛과 열을 내는 천체를 ‘항성’ 또는 ‘별’이라고 합니다. 별 주위를 도는 천체는 ‘행성’이라고 하고, 행성 주위를 도는 천체는 ‘위성’이라고 하죠. 그 외의 천체는 ‘소행성’, ‘왜소행성(왜행성)’ 등으로 분류합니다. 왜행성은 소행성보다 작은 천체를 말합니다.
소행성이었던 세레스는 2006년에 다시 왜행성으로 격이 낮아졌습니다. 당시 국제천문연맹(IAU)에서 태양계 행성의 정의를 새롭게 정립했는데 그 기준을 보면 △태양(항성) 주위를 돌고 다른 행성의 주위는 돌지 않아야 한다 △둥근 모양이고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만큼 질량이 크지 않아야 한다 △주변에 잡동사니와 같은 천체들이 없어야 한다 였습니다.
이런 기준들 때문에 세레스는 왜행성으로 분류됐죠. 행성에서 소행성, 다시 왜행성이 된 세레스는 기구한 사연을 가진 천체인 셈입니다. 현재 세레스의 격은 낮지만 태양계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왜행성이라 천문학계의 왜행성 분류기호에서는 1번입니다.
태양계 왜행성 중 가장 큰 세레스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천문학계에서 관심의 대상 중 하나인 천체입니다. 이 왜행성 지하에서 물의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죠. 물은 생명의 필수 조건이라는 점에서 세레스에서도 생명체 발견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2020년 8월 이탈리아 국립천체물리학연구소는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천문학’에 “세레스의 2000만년된 옥카토르 충돌구에서 물을 액체 상태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금 성분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연구진은 세레스에 근접한 돈(Dawn) 탐사선이 촬영한 사진을 분석한 결과 하이드로할라이트라는 소금 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하이드로할라이트는 염화나트륨과 물이 결합한 물질로 지구의 극지 바다를 떠다니는 얼음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지구 외 천체에서 하이드로할라이트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지요.
연구를 주도했던 이탈리아 국립천체물리학연구소의 마리아 드 산크티스 박사는 “하이드로할라이트는 세레스가 바닷물을 갖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면서 “세레스도 토성이나 목성의 위성들처럼 바다를 가진 천체다”고 설명했습니다.
세레스에 물이 있다는 증거는 이전에도 발견됐습니다. 2014년 1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허블우주망원경은 세레스에서 다량의 수증기가 분출되는 것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세레스에는 한국어 지명이 붙은 곳도 있습니다. 세레스의 10여개 크레이터(구덩이) 중 한 곳의 이름이 ‘자청비’입니다. 자청비는 제주도 신화에 나오는 농업의 여신 이름으로 하늘에서 오곡씨앗을 인간들에게 가져다 줬다고 합니다.
자칭비 이름은 독일항공우주센터(DLR)의 슈테판 슈뢰더 박사가 제안했고, 2017년 IAU가 이를 승인했습니다.
자청비라는 한국어 지명이 승인받은 것은 세레스라는 이름과 연관이 있습니다. 세레스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농업의 여신 ‘케레스’에서 유래했는데, IAU는 이 왜행성의 지명도 농업의 신 이름을 붙이는 게 어울리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나사를 비롯한 각 나라의 우주 연구기관·단체들은 외계생명체 찾기에 그 어느때 보다 열중하고 있어 특히 물이 있는 천체를 주목합니다. 세레스에서도 생명체 존재의 가능성이 확인됐고, 더욱이 한국어 이름이 붙은 곳도 있으니 많은 관심을 가져볼만 합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