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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끼' 허성태가 악역을 만드는 법

'미끼' 허성태 / 사진=쿠팡플레이 제공




34살의 나이에 잘 다니던 대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배우의 길에 뛰어든 허성태. 단역 생활, 경제적 어려움으로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노력하는 자는 결국 빛을 보기 마련이다. 그는 '오징어게임'으로 전 세계적 관심을 받았고, '미끼'를 통해 주연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미끼'(극본 김진욱/연출 김홍선)은 사상 최악의 사기 범죄를 저지르고 죽음 뒤로 숨어버린 그놈, 노상천(허성태)을 추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노상천은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사기 행각을 벌인 후 법망을 뚫고 해외로 도피한 인물이다. 현재는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유의 넉살과 언변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서민들의 등골을 뽑아 긁어모은 자금으로 권력자들을 포섭해 몸집을 키웠다. 시간이 흐른 후 2023년,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미 죽은 것으로 알려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허성태는 플롯의 특이함에 이끌려 '미끼'를 선택했다. 과거의 시간대와 현재 시간대의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는데, 마냥 동떨어져 있을 것 같은 이야기가 점점 만나면서 결론 나는 구성이 특이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노상천 캐릭터 자체로 놓고 봤을 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제가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은 시간 변화에 따른 노상천의 변화예요. 처음과 끝의 온도 차이가 확실히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한 작품 안에서, 한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한테는 도전이었어요."

'미끼' 스틸 / 사진=쿠팡플레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주는 건 서사를 강조하는 일이다. 악역의 서사를 길게 보여주는 건 악행의 당위성을 제공하는 위험이 동반된다. 허성태는 김 감독을 믿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감독님이 '부담은 내가 가질 테니 너는 자유롭게 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전 자유롭게 했습니다. 젊을 때 노상천을 보니 지금의 저 같더라고요. 촐싹거리기도 하고, 어리바리하기도 한 모습이 그렇죠.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까?'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허성태는 악역으로 시청자들에게 기억돼 있다. '오징어 게임', '카지노', '미끼'까지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것이다. 세게 연기를 해야 될 때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을 수많은 감독들이 믿어준 덕이다. 허성태는 악역 캐스팅 1순위로 떠오른 것에 대해 "내가 지저분하기 때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악역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다. 악역이라는 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작품에 맞는 캐릭터를 뽑아내는 게 그의 몫이다. 악역이지만 작품마다 변주하면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려고 한 게 그의 노력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같은 느낌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고, 허성태는 그 반응마저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초반에는 비슷해 보인다는 반응에 상처를 받기도 했죠. 그런데 저는 더 그런 반응을 보려고 해요. '오징어 게임' 나왔을 때 안 좋은 댓글을 많이 봤거든요. 이런 반응을 보면서 제 한계를 느끼기도 해요.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서 더 노력하게 돼요."



'미끼'의 노상천은 그동안 허성태가 맡았던 악역과 어떻게 달랐을까. 당연 서사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동안 변화하는 모습을 천천히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대본에 나온 대로 표현하면 됐다. 이는 그가 '미끼' 출연을 결정한 이유와 맞닿아 있다.

변화를 한다고 하지만, 계속 악역을 맡는 건 배우에게 테두리가 되기도 한다. 빌런 이미지가 굳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허성태는 다행히 중간중간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맡았던 게 숨 쉴 수 있는 구멍이 됐다고 말했다.



"'사이코패스 다이어리', '붉은단심', '아다마스',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와 같이 악역이 아닌 작품도 있었어요. 감독님들이 '허성태가 악역을 잘하긴 하지만, 충분히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보였다'고 하셨죠. 이런 작품이 중간중간 없었다면, 저도 고민이 많았을 거예요. 절 이렇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두렵지 않더라고요. 성격상 유머러스한 연기를 할 때가 마음이 편하기도 했어요."



허성태의 성격은 악역과 거리가 멀었다. 낯도 많이 가리고, 친해지는 데 시간이 꽤 필요한 편이다.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악역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그가 악역 연기를 잘할 수 있는 이유는 내면의 일부분을 꺼냈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러고 다니면 이상한 사람이죠. 극중 배우로서 합법적으로 폭력과 욕설을 할 수 있잖아요. 전 모든 분들이 센 모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요. 필요할 때 그런 성격을 표출하는 거죠. 연약해 보이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일이 발생했을 때 무서운 여성이 될 수 있는 것처럼요."

"저를 보고 움찔움찔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가 얘기를 해보면 '이런 사람인지 몰랐다'고 하시죠. 전 소극적이지만 친절하게 하려고 해요. 이런 온도 차를 좋아하는 분들도 계셔요. 특히 예능에서 솔직하려고 하는데, 어차피 가식 떨어봤자 알게 될 거라는 생각이에요."

허성태가 연예계에 데뷔한 이력은 꽤 특이하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그는 34살의 나이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그를 세상에 꺼낸 건 SBS '기적의 오디션'이다. 당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배우를 정말 하고 싶었는데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회가 온 거예요.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라는 느낌이었어요.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제 계획은 첫 번째 예선에서 탈락하면 분량을 지우는 거였어요. 그때까지 사표를 안 썼거든요. 심사위원 5명 중에 3명이 합격을 주면 다음 라운드로 가는 거였는데, 만장일치가 아니어도 도전하지 않으려고 했죠. 2명을 만족시키지 못했으니까요. 다행히 5명이 전부 합격을 줘서 도전할 수 있었죠."



이렇게 배우의 길에 들어섰지만, 약 5년 동안 단역으로 활동한 허성태. 고액 연봉을 뒤로한 그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기간은 직장을 다니던 아내 덕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연예계 바닥에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이었어요. 당시 전 프로필이 뭔지도 몰랐고, 오디션 보는 과정도 몰랐습니다. 습득하고 공부하는 과정이었는데, 처음에 사람들이 저를 봐주지 않았어요. 바닥에서 시작한 거라 경제적으로 힘들 때 후회한 적이 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았어요."

"저처럼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과감히 도전하라'고는 못하겠어요. 성공을 위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한다기보다는,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면 해볼 만한 거예요. 저처럼 극단적이면 힘들 수 있어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인생은 한 번뿐이니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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