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공급 부족이 심화하며 수도권 공사 현장의 절반이 레미콘이 모자라 공사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기 보수 시기인 데다 친환경 설비 개조에 시일이 소요되면서 시멘트 업체의 출하량이 회복되지 못한 영향이 크다. 또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콘크리트 타설량이 늘어나고 있는 점은 수요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더해 건설노조의 ‘준법 투쟁’에 시멘트 공급 부족까지 겹치면서 공기 지연을 놓고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24일 철근콘크리트서경인(서울·경기·인천)사용자연합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회원사 29곳이 시공 중인 서울·경기·인천 공사 현장 160곳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2곳(45%)이 시멘트 부족에 따른 레미콘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미콘은 공사장에서 바로 쓸 수 있도록 준비한 콘크리트로 시멘트에 골재와 물 등을 섞어서 만든다. 레미콘이 부족하면 콘크리트를 타설할 수 없어 공사가 차질을 빚게 된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3월은 건설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봄 성수기’의 시작인데 시멘트 업계에 따르면 현재 3월 기준 일 재고량은 60만 톤가량으로 평시 100~120만 톤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에 대한 원인을 놓고 전문 건설 업계와 시멘트 업계의 공방이 치열하다.
전문 건설 업계는 시멘트 업체들이 정기 대보수와 함께 친환경 설비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제한 출하에 따른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김학노 철근콘크리트서경인사용자연합회장은 “겨울철 비수기와 달리 봄 성수기를 맞이하면서 비축된 재고보다 수요가 많은 게 공급 부족의 원인”이라며 “시멘트사가 비수기에 공장을 정비하면서 생산량이 줄어들었는데 정비를 미루고 조속히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멘트 업계는 시멘트 수급난의 원인 중의 하나로 지난해 초 광주 서구 화정동 신축 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종합 건설사가 전문 건설사들에 평소보다 더 많은 콘크리트 타설량을 요구하고 있는 점을 꼽고 있다. 콘크리트 타설량을 늘리기 위해 레미콘에 들어가는 시멘트 수요가 늘었다는 것이다.
시멘트 공급 부족 사태는 단기간에 정상화되기 어려워 최장 8월까지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시멘트협회의 한 관계자는 “시멘트 생산 라인(킬른)의 정기 대보수 외에도 정부의 탄소 중립 목표 달성에 필수적인 환경 투자(설비 개조)를 함께 진행하면서 한두 달가량이면 끝났던 제한 출하가 최대 5개월가량 더 갈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8월이 되어서야 공급 부족이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공사 현장이 이미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으로 자재 수급에 차질을 빚은 데다 현재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월례비 지급 금지로 건설노조가 ‘준법 투쟁’을 함에 따라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주택협회가 소속 회원사 12곳을 대상으로 ‘타워크레인 태업 피해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주택 건설 현장 400곳 중 199곳(49.8%)에서 공기 준수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다른 지역보다 노조의 투쟁 강도가 거세 비노조원 타워크레인 기사 투입이 어려워 수도권 단지들 위주로 공기 지연 사태는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공기 지연에 따른 공사비 증액을 놓고 전국 곳곳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비화하고 있다.
건설 업계는 입주 지연 시 시공사가 부담해야 하는 지체 보상금 금액이 큰 만큼 정당한 공기 지연 사유를 인정해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 종합 건설사 관계자는 “원자재 값 상승과 화물연대·건설노조 파업은 건설사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공공 발주 공사처럼 민간 공사에서도 공기 지연 사유로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