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한때 암호화폐 업계의 ‘젊은 천재’로 불렸다. 국내에서는 미국 테슬라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와 비교되기도 했으며 2019년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서는 그를 30세 이하 아시아 리더 중 한 명으로 꼽았다. 하지만 지난해 초 발생한 테라·루나 사태는 그를 범죄자이자 도피자로 만들었다. 한국과 싱가포르·미국 정부에 쫓기는 몸이 된 그는 결국 중부 유럽의 한 작은 나라에서 길었던 도피 행각을 마치게 됐다.
24일 암호화폐 업계에 따르면 권 대표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회사를 두루 거친 청년 창업가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로 불리는 스탠퍼드대에 입학해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그는 2018년 테라폼랩스를 설립하고 자체 코인을 내놓기 시작했다. 테라폼랩스는 루나와 스테이블코인인 테라달러(UST), 그리고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인 앵커프로토콜이라는 3개의 축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한때 그가 세운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가 15억 달러 이상의 비트코인을 사들이면서 그는 ‘비트코인 고래’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암호화폐 시장 침체가 심화되면서 UST의 가격이 급락했다. 여기에 연동된 루나가 시중에 대규모로 쏟아져 나왔고 그동안 가격을 지탱했던 시스템이 붕괴됐다. 결국 지난해 4월 초 개당 14만 원이 넘던 루나는 5월이 되자 0.06원대까지 폭락했다. 하지만 권 대표는 루나 폭락 직전 열린 주주총회에서 테라폼랩스 한국법인을 해산하고 싱가포르로의 도피를 선택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그는 더 이상 한국의 머스크가 아니라 혈액 한 방울로 250여 종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며 거액의 투자금을 받아 챙긴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악의 사기꾼’ 엘리자베스 홈즈 테라노스 최고경영자(CEO)와 비교됐다.
그는 미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코인의 95%는 죽을 것”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밝혀 공분을 샀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투자자들의 고통에 미안하다” “전 재산을 잃었다”던 그는 최근 3000억 원대의 비트코인을 개인 지갑에 보유하다 스위스 은행 계좌로 옮겨 인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또다시 피해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9월 인터폴 적색 수배령이 내려지고 11월에는 한국 여권도 무효화됐다. 권 대표는 싱가포르에서 두바이로, 다시 세르비아로 이동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도피 생활은 계속됐다. 결국 올해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권 대표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으며 이후 한 달여 만에 덜미가 잡혔다. 해외 도피 11개월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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