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지만 30표가 넘는 이탈표가 나오며 민주당이 충격에 휩싸였다. 이 대표가 이번에는 간신히 구속 위기를 모면했지만 향후 검찰이 또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의석수를 내세운 ‘철통 방어’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증폭되는 분위기다. 특히 비명계를 중심으로 이 대표의 사퇴론이 불거졌던 만큼 이번 표결을 기점으로 거취 논란이 한층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지만 예상보다 많은 이탈표가 나오며 민주당은 격랑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297표 중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로 부결됐다. 찬성표가 출석의원 과반을 채우지 못해 결과적으로는 부결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가결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의원 전원인 169명이 본회의에 출석했지만 반대표는 138표에 그쳤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압도적 부결’을 자신한 것과 달리 간신히 가결을 피한 만큼 당내에서는 이 대표 거취론을 둘러싼 내홍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비명계 의원은 “현재 비명계에서는 부결 후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고 말했다. 비명계에서는 표결 전부터 이 대표의 거취와 관련된 결단을 요구해오기도 했다. 설훈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부결을 주장했던 것도 “이후 이 대표가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취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응천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에는 부결시키되 향후 이 대표에게 결단을 요구하자는 그룹이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정해진 수순인 만큼 당장 당헌 80조를 둘러싼 계파 논쟁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당헌 80조를 지난해 8월 개정했다. ‘정치 보복’으로 인정될 경우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직무 정지에서 예외로 두는 것이다. 비명계에서는 당시 당권 주자였던 이 대표 방탄용이라는 반발이 나온 바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기소되면 당헌 80조 관련 논란이 다시 불 붙을 수 있다”며 “비명계에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대표가 직을 유지하더라도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거취론을 둘러싼 친명계와 비명계 간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체포동의안은 부결됐지만 검찰은 추후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다른 사건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이번 체포동의안에서도 많은 이탈표가 나온 만큼 다음에는 부결을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이 대표는 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다음 달 3일 공판기일을 시작으로 주 1회 법정 출석이 전망되고 있다. 이 대표의 정상적 당무 수행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비명계에서는 이낙연·정세균·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이 최근 강연을 진행하는 등 지지자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윤영찬 민주당 의원 등 일부 의원은 올해 초 미국을 찾아 이 전 총리와 만남을 갖고 6월로 예정된 귀국 이후 역할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대표 사법 리스크가 심화하는 가운데 이낙연계에서도 몸을 풀고 있는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당 지지율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다. 지도부는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따른 컨벤션 효과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총선 전까지 이 추세가 이어지면 이 대표 리더십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내년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 중간 선거이고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인데도 민주당이 이 같은 이점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야당임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결과적으로 부결되면서 ‘방탄’ 비판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넥스트리서치가 MBN·매일경제신문 의뢰로 24~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7.9%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해 ‘통과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통과시키면 안 된다’는 응답은 39.4%에 그쳤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이 대표가 기소될 경우와 관련해서도 59.2%가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봤다. 대표직 유지 의견은 31.7%에 불과해 이 대표가 기소 이후에도 직무를 이어갈 경우 여론이 악화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불체포특권을 반대하는 여론이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체포동의안이 부결됐고, 계속해서 국민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면 이 대표에 대한 비호감도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 일단 침묵했다. 대통령실의 한 핵심 관계자는 “그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번 체포동의안 부결로 민주당이 이 대표 1인을 위한 방탄 정당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이 부결돼도 재판에는 계속 출석해야 한다”며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를 안고 민주당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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