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에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종목들이 상장 첫날 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가 되고 상한가에 오르는 이른바 '따상’에 성공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초중반까지만 해도 수요예측 참가자들은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상관없이 ‘저가 응찰’에 나서려는 유인이 컸는데, 그 이후 코스닥 지수가 반등하면서 공모 과정에서 부진했던 종목들이 역으로 따상에 성공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증시에 입성한 종목 중 장중 따상을 기록한 회사는 미래반도체(254490)·오브젠(417860)·삼기이브이(419050) 등 세 곳이다. 올해 상장한 회사가 다섯 곳임을 고려하면 60%의 확률로 장중 따상에 성공했던 셈이다.
특이한 점은 미래반도체를 뺀 오브젠과 삼기이브이는 모두 공모 과정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통 ‘공모 흥행’이 ‘따상’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지는 것과는 대비된다.
오브젠은 지난 10~11일 수요예측에서 98.5 대 1의 경쟁률로 공모가를 희망가 하단(1만 8000원)에 결정했고, 이후 16~17일 일반 청약에서도 6 대 1에 그쳐 부진했다. 삼기이브이는 지난달 17~18일 수요예측 경쟁률이 37.5 대 1로 집계돼 공모가를 기존에 희망했던 가격 최솟값(1만 3800원)보다도 20% 할인한 1만 1000원에 결정해야 했다. 그나마 일반 청약에서 117.6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오브젠과 삼기이브이가 장중 따상에 성공한 이유는 두 회사가 수요예측을 실시했던 1월 초중순에 비해 증시 여건이 개선됐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증시 전망이 비교적 보수적이었던 지난달 초중반엔 수요예측에 참가하는 기관투자가들이 최대한 낮은 가격에 응찰하려는 유인이 강했다.
그런데 공모가 확정 타이밍(수요예측 직후)과 상장일 사이에는 약 2주 정도의 시차가 있다. 그 ‘2주’ 사이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기대감이 가시화하고 한주라이트메탈(198940) 등 앞서 상장을 완료한 공모주가 증시에서 높은 수익률을 보이면서, 오브젠·삼기이브이가 수요예측 과정에서 낮게 책정한 공모가는 역으로 ‘할인 가격’처럼 여겨질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경준 혁신IB자산운용 대표는 “오브젠·삼기이브이는 상장 직후 유통가능비율이 20%대로 낮고 공모 규모도 작은 편이라 수급 여건이 좋았다”며 “이 가운데 코스닥이 최근 한 달 사이 600대에서 700대로 상승하면서 따상이 가능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수요예측 시장의 ‘양떼 효과’
오브젠·삼기이브이 사례는 두 회사의 ‘공정가치’ 산정을 두고 수요예측과 유통시장 간 ‘미스매치’가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기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기관투자가들의 ‘저가 응찰’ 경향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하반기 업계에선 “공모주 시장이 나빠지면서 수요예측 참가 기관들이 기술특례상장 기업 등을 중심으로 최대한 가격을 낮춰 잡으려고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같은 저가 응찰 경향은 수요예측 시장에서 만연한 ‘양떼 효과’와도 관련이 깊다는 평가다. 한 번 공모가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면 그에 따라 다른 기관투자가들도 추종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IB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수요예측이 ‘적정 공모가 발견 기능’을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같은 양떼 효과는 IPO 시장 활성화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 오브젠·삼기이브이가 수요예측 시장에 시사점을 준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선 두 회사의 따상이 실제 ‘펀더멘털’을 반영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수요예측 시장과 유통시장에서 두 회사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던 데엔, 결국 수요예측 과정에서 기관투자가들이 소신을 발휘하는 대신 여론을 좇는 관행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그간 수요예측 시장에선 ‘내가 좋게 봐도 남들이 부정적으로 판단하면 나쁜 쪽으로 베팅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렇게 되면 투자자들이 공모에 응할 때 헷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들이 주관적으로 자기 의사를 더 적극적으로 표시해서 자기가 좋게 보는 건 더 적극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는 식으로 가야지 ‘인기투표’식으로 수요예측이 전개되면 안 된다고 본다”며 “오브젠이나 삼기이브이 사례는 이런 점에서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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