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음에도 술에 취한 시민이 거리에서 사망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경찰청이 대책 마련과 실태 파악에 나섰다.
1일 경찰에 따르면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내부 현안회의를 열고 최근 연이어 발생한 주취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현장 경찰관 조치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논의했다. 윤 청장은 이후 서울 동대문구 휘경파출소에 방문해 “치안 최일선 현장에서 주취자 보호조치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고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실태를 파악하고 현장 경찰관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경찰관 2명은 한파경보가 내린 지난해 11월 30일 술에 취한 60대 남성 A씨를 집 대문 앞까지만 데려다주고 지구대로 복귀했다. 이들은 A씨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 현장에서 철수했으나 A씨는 6시간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강북경찰서는 해당 경찰관 2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달 19일에는 서울 동대문구에서 만취 상태로 골목에 누워있던 남성 B씨가 차에 치여 사망했다. 경찰관 2명이 현장에 출동해 B씨를 일으키려 하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만취한 B씨가 이를 거부하자 그를 일단 놔둔 채 순찰차를 타고 길 건너편으로 이동해 관찰했다. 그사이 승합차 한 대가 지나가면서 A씨와 충돌했고, 사고를 인지한 경찰관들이 다시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B씨는 끝내 숨졌다.
경찰 내부에서는 주취자 보호와 관련된 경찰관의 직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현장 경찰관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관련 제도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주지역의 한 경찰관은 경찰 내부 게시판인 '폴넷'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고 고귀한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주취자 등을 어느 선까지 보호해야 하는지 정확한 매뉴얼과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윤 청장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청장으로서 그런 목소리에 충분히 동감한다”며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이 선행돼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그 다음에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르면 술에 취해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보호하도록 규정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보호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규정이나 지침이 없는 상태다. 윤 청장은 “현장에서 유관기관과의 협업, 시설의 부족 등 법적·제도적 미비점이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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