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6개월 이상인 은행 정기적금 만기가 내년 4월부터 최소 1개월까지 짧아진다. 적금 만기가 한국은행의 규제 수단이 아닌 만큼 개정 요구만 있으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조항이었으나 별다른 요청이 없어 1995년 이후 27년간 그대로 유지되던 규정이다. 목돈을 마련하려면 최소 6개월 이상 적금을 부어야 한다는 생각이 30여년 동안 많이 달라졌고,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등 금융권 변화가 맞물리면서 낡은 규정이 바뀌는 셈이다.
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달 중 ‘금융기관 여수신 이율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의결해 은행 적금의 최소만기를 기존 6개월에서 1개월 이상으로 바꿀 전망이다. 금통위에서 의결되면 금융기관의 회계·전산 관련 준비 기간이나 한은의 통계 편제 과정 등을 고려해 5~6개월 정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4월 1일부터 시행된다. 한은은 앞서 개정안에 대한 예고 요청서를 홈페이지에 공고하고 청취한 결과 최소 1개월 이상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접수했다.
‘금융기관 여수신이율 등에 관한 규정’ 3조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별표’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만기 등 수신의 기타조건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바꿔말하면 별표에서 정한 대로 만기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수신의 기타조건은 정기예금을 만기 1개월 이상, 정기적금·상호부금·주택부금 등은 만기 6개월 이상으로 두고 있다. 근로자주택마련저축은 만기 1년 이상이다.
은행 적금 만기가 바뀌는 것은 1995년 11월 이후 27년 만이다. 당시 정기적금의 최소만기가 1년에서 6개월로 단축된 이후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금통위가 금융기관 여수신이율 등에 관한 규정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2003년 이후 19년 만에 처음이다. 한은이 전체 은행권의 대출금리 등을 정해주던 계획경제에서 벗어나 4단계 금리자유화를 시행했던 1997년 이전 규정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셈이다.
한은은 적금 만기를 정해둔 것은 회계 처리 등을 위해 요구불예금과 정기 예적금을 구분하려는 수단일 뿐 자금이동 통제 등 각종 규제와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한은 관계자는 “적금 최단만기는 규제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은행이나 금융 소비자 의견을 들어서 결정하고 있다”라며 “1995년 당시에는 목돈을 마련하려면 최소 6개월 정도 적금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종의 컨센서스가 있었으나 최근에는 이마저도 너무 길다는 의견이 나와 개정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은행 입장에서도 그동안 정기적금 만기를 단축할 유인이 크지 않았다는 평가다. 은행이 개인의 정기적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크진 않지만 적금 만기가 길수록 자금을 묶어두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랬던 것이 인터넷전문은행 등장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장기 납입보다는 단기 납입을 선호하는 20~30대가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을 중심으로 초단기 적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은행권이 27년 만에 한은에 개정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금리 인상기에는 만기가 짧을수록 수익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렸다.
한은도 이번 개정 배경에 대해 “디지털화 등 금융거래 환경의 변화, 단기 예·적금에 대한 은행권과 소비자의 요구 증대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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