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취임 일성으로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며 ‘기술’을 강조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은 핵심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분야의 초격차 전략 실현에 가장 먼저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를 달성해 메모리·비메모리를 아우르는 명실공히 글로벌 최고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서겠다는 계획을 달성하려면 과감하고 발 빠른 결단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 회장의 본격적인 ‘뉴삼성’ 경영 돌입에 맞춰 초대형 인수합병(M&A), 초격차 기술 확보, 최고급 인재 영입·육성 등 반도체 부문 핵심 전략들이 순차적으로 실행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이 △반도체 △바이오 △차세대 통신 △신성장 정보기술(IT) 연구개발(R&D) 등을 중심으로 향후 5년간 450조 원(국내 36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만큼 그룹 내 역량을 모아 미래 먹거리를 놓고 시너지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이 구상하는 ‘뉴삼성’ 비전의 핵심 카드는 주력 산업인 반도체에서 가장 먼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1위인 메모리반도체에서 시장 불황 속에서도 “감산은 없다”는 공격적인 자세로 ‘초격차 굳히기’를 시작했고 비교열위인 시스템반도체 또한 2030년까지 1위를 차지하겠다는 계획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중에서 특히 이 회장이 뉴삼성 기치를 앞세워 들여다볼 주력 사업으로는 시스템반도체 분야가 첫손에 꼽힌다. 이 회장은 부회장 시절인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메모리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비롯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만 2030년까지 133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지난해에는 여기에 38조 원을 더해 총투자 계획 규모를 171조 원까지 늘렸다.
비전 선포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시스템반도체에서 삼성전자가 거둔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시스템반도체 중 주력으로 꼽았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분야에서 미국 기업인 퀄컴·애플 등에 밀려 점유율이 반 토막 수준으로 밀렸다.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올해 3분기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하는 등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내고 있지만 2분기 기준 점유율 16.5%로 1위인 TSMC(53.4%)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으로서는 시스템반도체의 부진과 메모리반도체 시장 악화로 TSMC에 ‘반도체 매출 세계 1위’를 내준 만큼 삼성전자의 기존 위상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TSMC뿐 아니라 자국 보호주의의 혜택을 받는 인텔·엔비디아·퀄컴 등 미국계 기업, 거대 시장을 등에 업은 중국계 기업들과의 경쟁도 격화하고 있어 더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43조 6000억 원 규모였던 반도체 설비투자를 올해 47조 7000억 원까지 늘려 집행할 계획이다. 기술력에서도 삼성전자는 6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 3㎚(나노미터·10억 분의 1m) 반도체 공정 제품을 세계 최초로 양산하며 경쟁사들과 격차를 벌렸다. 나아가 2025년 2㎚, 2027년 1.4㎚ 공정 도입 계획까지 공표했다. TSMC는 GAA보다 떨어지는 핀펫 기반으로도 9월 3㎚ 제품 양산 약속을 못 지킨 채 연기한 상태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착공도 이 회장이 직접 챙겨야 할 사업이다.
시스템반도체 관련 대형 M&A도 이 회장의 주요 관심사다. 삼성전자는 2016년 전장 기업 하만을 인수한 뒤 이 회장의 리더십이 약화되자 지금껏 글로벌 M&A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달 초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만나 영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암(ARM)과의 포괄적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압도적 세계 1위인 메모리반도체 사업의 경우는 이 회장이 위기의 틈을 타 시장 자체를 평정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앞서 삼성전자는 이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내년과 2024년 차세대 D램, V낸드플래시 제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2025년 차량용 메모리 시장에서 1등을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 미국 마이크론, 일본 기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 SK하이닉스가 모두 가격 하락을 이기지 못하고 감산의 백기를 든 상황에서도 생산량을 유지하며 홀로 버티겠다는 입장을 거듭 되풀이했다. 이 회장이 이를 지렛대로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 동맹’ 결성 과정에서 더 자신 있게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반도체 비전은 점차 경쟁이 격화되는 시장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과감히 던진 도전장”이라며 “삼성이 메모리 초격차를 넘어 반도체 3대 분야를 모두 주도하는 초유의 기업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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