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급등에 따른 환차손의 여파로 3분기 ‘완전자본잠식’이 유력한 아시아나항공(020560)에 내년 상반기까지 영구 전환사채(CB) 이자와 회사채 상환 명목으로 4000억 원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항공(003490)과의 기업결합 심사가 지연되는 가운데 올해 말까지 자본잠식을 해소하지 못하면 상장폐지로 내몰릴 수 있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결국 출자전환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28일 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이 올 4분기와 내년 상반기에 걸쳐 갚아야 할 영구채 이자와 회사채는 3800억 원에 이른다. 당장 내년 상반기까지 영구채 이자로만 약 732억 원을 상환해야 한다. 6월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미상환 영구채는 1조 1550억 원이다. 산은과 수출입은행·대한한공·증권사 등을 상대로 총 여섯 차례 발행했으며 조건은 기한에 따라 금리가 가산되는 ‘스텝업’ 방식으로 연 4.7~12.45%에 형성돼 있다.
회사채는 내년 상반기까지 540억 원이 만기 도래하고 257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 중 잔액 317억원을 다음 달 9일까지 상환해야 한다. 연말까지 자본잠식을 해소해야 하는 아시아나항공 입장에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4000억 원에 이르는 자금 상환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상장사의 연말 사업보고서 기준 완전자본잠식은 상폐 사유가 된다. 여기에 해외 주요국의 기업결합 심사까지 지연되면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 주채권은행인 산은은 대한항공이 지원에 나서라는 입장이지만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 있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산은이 결국 출자전환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전망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산은은 경기 침체로 하반기 다른 기업들의 구조조정도 챙겨야 할 형편이라 아시아나항공을 지원할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9월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총 익스포저(대출과 투자)가 2조 7450억 원에 달하는 것도 부담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기업결합 심사가 빠르게 진행돼야 하는데 공정거래위원회 허가 단계에서부터 지연돼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해외 기업심사 지연에 대비해 산은 등이 플랜B를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아시아나, 3분기만 환차손 3600억 '완전잠식' 우려…산은, 출자전환 나서나
아시아나항공과 관련해 산업은행의 출자전환 카드가 거론되는 것은 아시아나항공의 자본잠식이 해소되지 않고 기업결합 심사도 지연될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은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전제로 경영 정상화의 큰 그림을 그렸지만 당시 상정한 조건들은 현시점에서는 다 틀어져버렸다.
먼저 상반기 기준 283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고도 3분기에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완전자본잠식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항공사들은 달러화를 빌려 항공기 구매와 리스 비용, 항공유 비용 등을 지불한다. 환율이 높아지면 평가손실이 따를 수밖에 없다. 6월 말 기준 1301원 50전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9월 말 1439원으로 3분기에만 10% 이상 급등했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환율 급등에 따라 3분기에 3600억 원 안팎의 환 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산한다. 문제는 상반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올 상반기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6544.6%로 지난해 말보다 4134%포인트 증가했다. 항공기 리스 계약이 부채로 기록되는 항공사 회계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이미 정상 기업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2분기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자본 총계는 2047억 원이다. 자본금이 3721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반기에 이미 부분 자본잠식(45%)이 진행된 셈인데 3분기 환차손까지 반영되면 완전자본잠식을 피할 수 없다. 4분기에 여행 수요가 살아나고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 자본잠식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만 ‘천수답’과 다를 바 없다.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신용 경색은 갈 길 바쁜 아시아나항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장 올해와 내년 상반기에 걸쳐 만기가 도래하는 540억 원의 회사채는 현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BBB-)을 고려할 때 차환이 거의 불가능하다. 산은과 수출입은행·대한항공 등을 상대로 발행한 1조 1550억 원 규모의 영구채 역시 스텝업 방식으로 금리가 불어나 내년 상반기까지 700억 원이 넘는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항공 티켓 매출을 담보로 유동화하기 때문에 그동안 안정적인 기관 수요들이 받쳐줬던 자산유동화증권(ABS)도 회사채 시장 경색으로 재구조화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달 24일 1600억 원 규모의 ABS를 현금으로 상환한 아시아나항공은 다음 달 9일까지 잔액 317억원을 또다시 갚아야 한다. 가뜩이나 4분기에도 경영 환경이 불투명한 가운데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을 쌓아두지 못하고 부채를 갚는 데 써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상반기 말 충분한 유동성으로 차입금 상환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주요국에서 진행 중인 대한항공과의 기업결합 심사가 지연되는 것도 아시아나항공에 부담이 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기업결합 심사 통과를 전제로 아시아나항공에 1조 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준비하고 있다. 심사가 승인되면 아시아나항공의 위기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주요국의 심사가 내년이 돼야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외교적인 경로로 알아보고 있는데 내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직 기업 인수가 확정되지도 않은 대한항공에 백기사 역할을 요구할 수도 없다. 산은은 기업심사 지연 시 대한항공이 나서 아시아나항공의 자본잠식을 해소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1조 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실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한항공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추가 자금을 지원하기는 어렵다. 이사회에서 배임 이슈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산은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산은이 이미 아시아나항공 한 기업에만 2조 7000억 원이 넘는 익스포저를 갖고 있어 신규 자금 지원을 할 가능성은 낮다. 경기 침체로 올 하반기와 내년까지 한계기업들의 구조 조정이 본격화하면 산은은 아시아나항공 외 다른 기업들에도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주요 자금 조달 수단이었던 산금채 발행도 회사채 경색에 따른 쏠림 현상으로 당분간 쉽지 않다. 기업 인수합병(M&A) 관련 로펌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완전자본잠식이 4분기에도 해소되지 않으면 항공업뿐 아니라 다른 업종 한계기업들의 자금난도 더욱 도드라질 수 있다”며 “결합심사가 지연되면 산은이 출자전환 형태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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