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삼성’ 도약의 중책을 짊어진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분야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초격차’ 기술을 미래 해법으로 제시했다. 복권 이후 첫 행선지로 선택한 경기 용인 기흥캠퍼스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발원지라는 의미가 있다. 이곳에서 이 부회장은 할아버지이자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의지를 되새기면서 재도약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19일 경기 용인 기흥캠퍼스 연구개발(R&D)단지 기공식에서는 이병철 회장이 1983년 2월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발표했던 ‘도쿄 선언’ 직후의 발언 중 4개 문장이 소개됐다. “무자원 반도인 우리의 자연적 조건에 맞으면서 해외에서도 필요한 제품을 찾아야 한다.” “이것(반도체)이 곧 고부가가치, 고기술 상품, 즉 첨단 기술 상품이다.” “반도체·컴퓨터 등 첨단 산업 분야는 세계 시장이 무한히 넓다.” “반도체·컴퓨터 산업은 시장성이 클 뿐 아니라 타 산업 파급효과가 지대하며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복수의 회사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이 글귀를 곁에 두고 꾸준히 되새기면서 반도체 사업 육성의 의지를 다져왔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 발원지인 기흥캠퍼스를 찾아 선대의 유지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글로벌 1등 반도체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과거의 초심으로 돌아가 더욱 과감한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다짐이 담겼다는 해석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기공식에서 “40년 전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첫 삽을 뜬 기흥사업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반도체는 삼성의 주력 사업일 뿐 아니라 한국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경제의 핵심 성장판이다. 삼성은 반도체 사업 진출 40년 만에 글로벌 1위 기업으로 눈부신 성공 신화를 이뤘지만 최근 글로벌 무역 질서의 급격한 재편 속에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의 이날 행보는 ‘반도체 초강대국’ 건설을 통해 삼성뿐 아니라 국가적 경제 위기 극복이라는 국민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해석이다.
이날 기공식을 연 기흥 R&D단지는 ‘초격차’ 기술 개발을 위한 핵심 전진 기지 역할을 맡게 된다. 기흥캠퍼스 내 10만 9000㎡(3만 3000여 평) 규모로 건설되는 R&D단지에는 2028년까지 약 20조 원이 투입된다. 이곳에서는 메모리,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등 반도체 관련 핵심 기술을 총망라해 개발할 계획이다. 최첨단 설비가 갖춰진 R&D 전용 라인을 도입해 차세대 신제품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반도체 품질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삼성의 자체 기술력 확보를 넘어서 국내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 협력 업체들과의 R&D 협력을 강화하며 산업 생태계 구축에도 힘을 실을 방침이다. 경계현 DS 부문장은 이날 반도체 기술 경쟁력 확보 전략을 보고하면서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들이 스스로 모이고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기회를 통해 조직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기공식에서 삼성의 ‘방향성’을 제시한 이 부회장은 이후 DS 부문 사장단과 회의를 갖고 글로벌 현안 분석, 차세대 기술 개발 현황, 기술력 확보 방안 등 미래를 위한 세부 전략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초격차’ 달성을 위한 기술력 확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직원들과 소통하며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도전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조직 문화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임직원 간담회를 통해 직원들의 건의 사항 경청 등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데 공을 들였다. 간담회에서 한 직원이 ‘아내에게 이 부회장과 사진을 찍어오겠다고 했다’고 말하자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직원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기도 했다. 간담회 후에는 모든 참석자들과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공식에 앞서 구내식당을 찾아 라면을 먹으면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40년 전 ‘도쿄 선언’ 당시의 글귀를 다시 꺼낸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약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자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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