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국내 투자자들에게 2000억원대 손실을 가한 중국 회사 고섬의 분식회계 사태에 대해 법원이 당시 상장주관사였던 증권사의 책임을 재차 인정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2부(김종호 이승한 심준보 부장판사)는 전날 한화투자증권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파기환송심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한화투자증권이 고섬의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중요정보의 진실성에 관해 대표주관회사의 조사 결과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스스로는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로 인해 재무제표상 현금 및 현금성자산에 관한 거짓 기재를 방지하지 못했다"며 "단순한 부주의를 넘어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따른 것이다.
중국 섬유업체 고섬은 2011년 1월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는데, 이후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 2개월 만에 거래가 정지되고 2013년 10월 상장폐지됐다.
당시 고섬은 심각한 현금 부족 상태였는데도 마치 1천억원 이상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가진 것처럼 제출 서류에 기재했다. 고섬은 이를 통해 2천100억원 규모의 공모 자금을 부당하게 취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당국은 2013년 10월 상장주관사였던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과 한화투자증권에 부실 심사의 책임을 물어 20억원씩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한화투자증권은 "고섬의 상장 시 회계법인의 감사 의견을 따랐을 뿐"이라며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1·2심은 모두 한화투자증권 손을 들어줬다. 증권 발행인이 증권신고서의 중요사항에 관해 거짓을 기재한 경우 발행인이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될 뿐, 증권사에 과징금을 물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그러나 2020년 2월 "주관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증권신고서 등의 중요사항을 거짓으로 기재한 것 등을 방지하지 못한 때에는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다"며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투자자들이 인수 업무를 맡는 상장 주관사의 평판과 정보를 믿고 시장에 진입하는 만큼, 상장 주관사가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 의무 및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봤다.
한화투자증권과 함께 상장 주관을 맡았던 대우증권 역시 금융위를 상대로 별도 소송을 내 1·2심에서 승소했지만,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친 끝에 지난 4월 원고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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