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동설이었던 우주가 지동설로 바뀐 것이죠."
정권 교체기에 정신없이 뒤집어지는 경제정책에 대한 경제 부처 출신 전직 관료의 촌평이다. 당장 우리 경제의 컨트롤타워라는 기획재정부만 봐도 확장재정 정책은 긴축으로, 법인세 인상 기조는 완화로, 부동산 수요 억제는 규제 개선으로 단박에 바뀌었다. 5년 동안 탈(脫)원전 야경꾼 역할을 하다 돌연 원전 수출 전도사로 나선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모습은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목덜미가 뜨끈해질 정도다.
이 같은 관료들의 조변석개를 두고 나온 말이 '영혼 없는 공무원'이다. 물론 이런 비아냥에 관료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직접 뽑은 선출 권력에 복무하는 것이 공무원의 본령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 더해 '먹고사니즘'의 문제도 있다. 공무원들의 민간 진출 통제가 점점 강해지면서 장관까지 지낸 고위 관료조차 3년 이상 보릿고개를 겪어야 하니 공무원 옷을 벗는 게 도전이 아닌 공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인사권자에게 직(職)을 걸고 입바른 소리를 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적어도 아직까지는 관(官)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점이다. 당장 마스크 품귀 현상만 빚어도 국민 전체가 대통령을 쳐다보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결국 관료들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경제 부처 공무원들은 경제 운용에 대해 결코 양보하지 않는 최소한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15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전면 금지라는 경제정책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 그 기반에 ‘담보 가치만큼 돈을 빌려준다’는 금융 산업의 절대 원칙을 허무는 독소가 있기 때문이다. 원칙 파괴가 수요자들의 공포로 이어져 만들어낸 것이 지금의 부동산 시장 ‘폭망’ 아닌가.
국가 재정 운용에도 이와 비슷한 원칙이 있다고 본다. 재정 건전성이 조금만 망가지는 신호가 나와도 글로벌 투기꾼들의 그림자가 우리 시장에 어른거린다. 당장 특별한 위기 징후가 없는데도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선을 위협하고 이 때문에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에 통화 스와프 문제를 꺼내야 하는 신세가 되지 않았나. 기재부가 예측한 세수(稅收) 규모를 두고 불과 한 달 전까지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음모론 운운하는 데도 영혼 없는 공무원에 대한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은 윤석열 대통령이 테크노크라트에게 상당한 신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관료들을 천동설 우주의 원숭이 신세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게 윤 대통령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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